간단 전시 리뷰 - 플라토 미술관 - 스펙트럼 스펙트럼
모바일 앱이 생긴 관계로 간단한 리뷰는 해우소에 배설하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조금은 내 생각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다.
오늘 본 전시는 바로 시청역 플라토 미술관의 스펙트럼 스펙트럼이다. 전시의 전체적인 첫 인상은 바로 '플라토'와 '리움'의 관계정의였다.
리움의 부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플라토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왔다. 그 결과를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작가의 작업 각각이 주는 느낌들은 앞서말한 의미를 넘어선다 먼저 플라토의 전시 설명문을 보자.
[삼성미술관 플라토는 리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새롭게 조망하는 기획전 <스펙트럼-스펙트럼>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리움의 대표적인 전시 프로그램으로 지난 2001년 이후 5회의 전시를 통해 총 48명의 신진작가를 배출한 <아트스펙트럼>을 모티브로 한다. <아트스펙트럼> 출신작가 7명이 새로운 작가 7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스펙트럼-스펙트럼>은 리움의 지난 10년의 성과를 기념하는 것은 물론, 플라토의 확장된 시각을 더한 일종의 메타(meta-) 전시로서 하나의 전시모델이 발전하고 지속 가능한지를 실험해보는 전시이다.
김범-길종상가, 미나와 Sasa[44]-슬기와 민, 지니서-홍영인, 오인환-이미혜, 이동기-이주리, 이형구-정지현, 정수진-경현수 등 총 14명(팀)의 작가들은 오늘날 미술가들이 마주하는 현실에 대해 깊이 사유하면서 다양한 자구책과 해법을 모색한다. 삶의 난해함을 퍼즐풀기로 헤쳐나가거나, 고정된 역사에 다수의 대안을 제시하여 대체 가능성을 모색하고, 예술활동을 비즈니스로 치환하는 등, 다양한 시각적 매체와 작가들 스스로 생산한 텍스트를 통해 풍부한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환상’ 또는 ‘유령’이란 말과 어원을 공유하는 빛의 ‘스펙트럼’이 두 번 교차되는 양상을 개념화한 <스펙트럼-스펙트럼>은 전시를 통해 주제와 변주, 기원과 확장, 반복과 차이의 메커니즘을 실험하면서 리움과 플라토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원천으로부터 파생된 지류가 더 큰 생동감을 확보하는 것처럼 작가들의 주체적인 참여로 확장된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를 폭넓게 조망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자체는 리움의 아트 스펙트럼 작가들이 추천한 다른 작가들이 함께 하는 구조였다. 이것은 마치 스펙트럼을 두 번 비추어 현대미술을 조망케 하는데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지 않나 생각했다. 전시 전체의 작가들의 통일된 내러티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그들의 합의점은 그들이 바라보는 현대미술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시장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작품 중 인상적인 것들은 '정지현 작가'와 지니서 작가의 작품들이다.
정지현 작가 - 저편의 리듬
정지현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해온 것들에 대한 것이다. 그는 그들을 다시 보게 만들어준다. 예를들면 로비 중앙에 있는 <종이 낙하 장치 : 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진>은 8분마다 종이를 낙하시킨다. 여기에는 '빛과 중력의 계약을 잊지 않기로'라고 써있으며 낙하하는 순간의 종이의 운동성과 흑연? 이라고 말하는 흔적이 빛과 중력이 우리 눈 앞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빛, 중력을 너무나 심드렁하게 받아들이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예술이라는 것으로 보여줄때 우리는 오히려 허구에서 현실성을 찾게 해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작가의 작업에서는 그 형식과 조형성이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커다란 현실성이 나타난다. 이는 사진으로 게시한 <저편의 리듬>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업은 카운터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소리를 들려준다. 이는 마치 누군가의 시간을 시각화한 느낌이다. 우리는 모두 24시간의 하루를 살지만 그 시간들의 배열 규칙은 개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도 너무나도 익숙한 시계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작가의 작업은 이를 뛰어넘어 다시 돌아보게 시각에 호소한다.
지니서 작가 - Rivers
지니서 작가의 작품은 형태는 부드럽게 소재는 단단한 물성으로 나탄다고 말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은 마치 어딘가 흐르는 유한 존재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는 가죽끈을 마치 고정하는 즉, 물체와 물체를 단단히 묵는 물성을 가진존재로 생각한다. 이 작업또한 두 기둥을 단단히 묶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 작업은 눈으로 쫓아가면서 그 흐름을 즐기게 한다. 또한 작업은 플라토라는 공간 즉, 미술관 공간을 다시 보게 해준다. 이를 통해 소재의 물성에 대한 탐구와 공간의 흐름에 대한 탐구가 동시에 이뤄진다.
전시공간 내부로 들어가면 다양한 작품들이 나열된다.
이주리 - <검은 잔영>
이주리 작가의 작업은 흐르는 듯한 에너지를 갖는다. 그녀의 작업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자 하는가? 작품을 보면 이 회화는 일반적 전통의 회화와 아주 다르다. 그로테스크하고 생경한 이미지들은 그녀의 물질문명에 대한 한탄이다. 또한 기성세대 혹은 사회의 관습에 대한 저항정신이기도 하다. 검고 흰 색은 불안성을 강조시키며, 내재된 관습을 부수고자 하는 욕망, 에너지, 어디론가 끊임없이 향하고자하는 '것'을 표현한다. 한 여자가 들이붙는 물은 마치 기름과 같다. 그림 속 인간들은 그 위로 배를 타고 향한다. 그런데 이 기름과 같은 물은 사람의 형상이 된다. 결국 이것이 시사하는바는 내 생각에 물질문명의 산물(기름)이 그것을 만든 인간을 죽이는 것 즉, 결국 인간 스스로가 만든 문명에 의해 피폐해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오인환 - <경비원과 나>
오인환 작가의 작업은 간단히 말해 사회관계 계층에서 구분된 다른 이들이 하나로 합일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플라토 미술관의 경비원과 매주 함께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가는 결과적으로 그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실패는 실패라기보다는 오히려 성공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관습적인 사회계층의 면모를 타파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경비원은 작가와 함께 할 수 없기에 안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는 사회관계에서 우리가 이 선택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아가 사회적인 관습은 무너지고 단지 자유로운 한 개인를 보여준다.
김범 - <무제(친숙한 고통 # 13)>
김범 작가의 작업은 미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표상적인 미로가 아니다. 너무나도 거대한 작업은 복잡하고 복잡한 미로를 공개하며 플라토 미술관의 설명에 따르자면 '시각적인 퍼즐'이 된다. 이 퍼즐은 작품을 보는 관객과 실제적 관계를 구축한다고 플라토 미술관은 설명한다. 이는 곧 미로를 나가기 위해 눈을 바삐 움직이는 관객과 이를 힘들게 하는 거대한 미로의 관계일 것이다. 미로는 현실에서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들 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미로를 해결하지 못한채 포기하려고 한다. 그 순간 미로의 길은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고통스러운 것을 은유한다. 하지만 우리는 때론 거대한 문제에 대해 이를 잠시 내려놓고 주위를 환기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는 바로 김범의 작업에서 내가 느끼는 문제의 해결 방법 중 하나이다.
스펙트럼 스펙트럼에서 내가 인상깊게 본 작업을 나열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시를
직접 보는 것일 것이다. 복제된 시각이 아닌 눈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전시로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을 넓혀보자. 사유의 배설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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