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 조각의 낭떠러지





2015년 한국에서는 두 가지 ‘기념비 조각’[각주:1]이 제작되었다. 하나는 세계인과 공유된 경험을 상징하는 ‘손’이었고, 다른 하나는 분단국가의 특수상황이 자아낸 비극을 상징하는 ‘발’이었다. 두 기념물은 각각 희극과 비극의 사건을 기록하는 구체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기념비 조각’은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위계적 권력을 정당화 하는데 기여했다. 제작주체들은 ‘기념비 조각’에 담긴 의미를 예술로서 정당화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의 낭떠러지로 밀려난다. 이 글에서 나는 두 ‘기념비 조각’들이 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 밝히고자 한다. 혹자는 기념물의 목적에만 의거해 이 비판이 신경질적 반응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기념비 조각’이라는 용어 자체가 북한의 미술을 옹호하기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제작주체가 선택한 ‘기념비 조각’이 기념대상을 좀먹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또한, 모더니즘 이전에 기능한 기념비 속성의 조각이 구시대적 이미지라는 것을 직시해야한다.




희극 - 강남시 없는 강남스타일 


사건의 순서에 따라서 희극의 기념물에 대해 먼저 기술해보자. 희극은 한 가수의 노래가 ‘유투브’에 게시되고, 자국의 인기를 넘어 세계적인 호응을 얻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노래는 ‘강남스타일’로, 불시에 축제의 장을 소환하며 국제적 성공을 통해 자국민에게 기쁨을 불어넣었다. ‘강남스타일’은 문화적으로 점유영역이 좁았던 한국에선 세계적 성공의 신호탄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음악 자체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싸이’라는 가수의 엽기 캐릭터에 의한 성공이었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은 불분명했고, 싸이와 그의 노래는 소비사회의 유행에 의해 규정되었다. 유행곡은 순간에 머무르는데 자신의 힘을 온전히 소비한다. ‘강남시’는 이 유행곡의 제의적 효과를 극대화한 ‘말춤’동작에서 ‘손’을 가져와 기념물로 사용하고자 했다.


‘강남스타일 스토리텔링 랜드마크 조형물’(이하 강남스타일 조형물)이라는 기념물은 4억 1832만 2000원의 세금이 투자되어 관광콘텐츠의 빈곤함을 메꾸기 위해 제작되었다. 조형물의 디자인은 ‘황만석’ 작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강남스타일이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일종의 사건인 셈”[각주:2]이며 “4억원을 들여 100억원, 1000억원씩버는 관광자원이 된다면 정말 훌륭한 투자 아니냐”[각주:3]고 주장한다. 비난의 여론을 문화콘텐츠에 대한 무시라고 판단하는 그는 이 기념물이 SNS에서 화자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들의 궁휼한 주장은 무엇보다 지역적 특성에 알맞는 스토리가 있는 조형물의 제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남시는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명성을 선택했고,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코엑스에 조형물을 전시했다. 그렇다면 ‘강남스타일’은 기념물로 제작될만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을까? 그 ‘스토리’는 세계인이 노래를 공유했다는 사실인가? 애석하게도 ‘강남스타일’은 ‘강남’과 직접적인 관련이 크게 없다. 실제로 그 노래는 무엇도 말하지 않는 속빈 축제음악이다. ‘강남시’에 대한 어떤 의미도 담고있지 않은 그 노래의 제목에 따라 기념물을 제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화콘텐츠가 한국에서 얼마나 오용되고 빈곤하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남스타일 말춤의 손동작은 넓이 8,300mm, 높이 5,300mm의 거대한 브론즈 상으로 재현되고, 조형물 하단부에는 세계를 상징하는 지구가 설치된다. 지구 위에 관광(람)객이 서면 ‘강남스타일’이 나와 흥을 돋구게 된다. 과거의 조형물과 달리 ‘강남스타일 조형물’은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다가오며, 사진을 찍도록 요구한다. 경외와 지배의 상징물이었던 기념비 조각은 코엑스 앞에서 SNS에 의해 납작하게 소비될 운명에 처해있다. 과연 싸이의 강남스타일 조형물은 효과적인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싸이라는 한 가수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는 사료가 되지는 않을까? 결국 기념물은 목적부터 관광자원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투자된 것이다. 축제를 불러오는 ‘손’은 돈을 벌기 위해 주조되었다. 이런 계획들은 불확실한 경제적 현상을 목표로 한다. 이 기념물의 제작과 설치는 세금의 낭비뿐만이 아니라 시각문화의 빈곤함을 채우기 위해 허무맹랑한 스토리를 구성하는 상황을 말해준다.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못한 공간과 이야기들은 관광물로서 쉽게 소비될 수 있지만, 역사, 문화적 가치를 가지는 존재로서 형성되지는 못한다. 그것은 시스템을 고려하지않고 억지로 끼워맞춘 상태나 다름없다. ‘보드리야르’가 지도가 영토에 선행한다고 밝히듯, 뮤직비디오가 기념물과 장소에 선행한다. 우리는 이 시각문화의 그릇된 이용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휘둘린다. 기념물의 목적은 동시대에서는 부의 전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세계적 경험에 기반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모든 문화가 혼성되고 쉽게 소비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강남스타일 조형물은 공허한 형상만을 영원히 기록할 것이다. 미래에, 그리고 지금도 유행에 따라 대중음악은 하루가 다르게 소비된다. 공허한 이미지는 한 순간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자리한다. 그 순간은 유보되고, 지루한 브론즈 상만이 남는다. 그것은 4억의 가치를 가지는가?





비극 - 굳어버린 발


희극을 뒤로하고 이제 비극에 대해 서술해보자. 사실 이 사건에 대해 감히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기술한다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겐 결례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비참한 기념물에 의해 사건의 피해자는 확인사살을 당하고 있다. 사건은 8월 4일 일어났다. 수색을 나간 경기도 파주시 1사단 소속 GP 수색 대원들은 북한이 매설한 것으로 밝혀진 목함지뢰를 밟아 폭발에 휘말렸다. 지뢰자체는 북한의 소행인것으로 결론이났다. 뒤이어 국방부는 북한에 강경한 대응을 위해 ‘대북심리전’을 펼쳤다. 남북간에 물리적 대응이 오고간 뒤 고위층의 합의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은 피해자에 대한 국방부와 국가의 태도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하재헌 중사와 김정원 중사는 ‘발’이라는 신체를 잃었다. 이들이 잃은 ‘발’은 국방부의 영웅만들기에 이용되었다. 


비극의 기념비 조각은 시원치않은 잡음들을 일순간에 소거시키려는 듯이 만들어졌다.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평화의 발’이라는 이름의 이 조형물은 ‘발’을 잃은 두 군인의 육체를 대신하며,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까지 환원되었다. 그러나 ‘발’은 제 것으로 걷지못하는 군인들의 끔찍한 상황과 분단국가의 슬픔만을 반복재생시킨다. 국방부는 심지어 기념물의 제막식에 희생 군인들을 불러 기념사진까지 촬영시켰다. 사건의 당사자인 두 군인 그리고 수색대대의 병사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국방부와 정부의 정신승리를 위한 희생자가 되었다. ‘발’이 잘린 자에게 ‘잘린 발’을 기념하게 하는 것은 그의 소실된 신체를 조롱하는 것이다.





‘평화의 발’에는 그 의도와 달리 어떤 평화적 의미도 담지못했다. 이 조형물의 제작자인 왕광현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겸임교수는 “두 영웅의 부활한 발이 통일이 돼 평화가 찾아온 비무장지대를 걷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각주:4]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조형물은 8월 20일 북한의 포격도발 당시 대응사격에 사용된 포탄의 뇌관을 재료에 포함해 제작되었다. 그 ‘뇌관’은 전투의 상흔이다. 그 흔적을 녹여 만든 조형물에서 ‘통일’로의 염원이 어떻게 쉽게 연결될 수 있을까? 그것은 평화가 아닌 분단의 명확한 증거다. 이미지만으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말하고자한다면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불편하게도 국방부의 이런 보여주기식 행정처리는 군대의 자기비판에 대한 한계점을 실감하게한다. 발의 주인인 두 병사에 대한 어떤 인터뷰도 허락되지않는다. 그들은 기념된 영웅이지만 여전히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으로서 ‘권력’의 희생물이다. 


2억의 자본이 ‘발’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었다. 육군 제 1군단과 효성 그룹이 공동 기획/제작을 맡았고, 제작비는 효성그룹이 전담했다. 경기도청은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무상으로 작품을 설치할 수 있게 했다. 효성그룹이 지원한 2억은 실질적으로 피해병사에 대한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그것은 ‘기업’과 ‘국가’의 자본에 의한 결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피해자의 ‘발’은 사건을 무사히 넘긴 국방부 자신들을 기리는데 이용되었다. 군사적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책 갈구보다는 급급하게 보여주는데 혈안된 것으로 보인다. 형상화된 ‘발’은 싸이의 ‘손’과 마찬가지로 허무맹랑한 ‘통일’이라는 스토리의 상징으로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승리’와 평화통일으로의 ‘염원’을 통해 기념비 조각은 정의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었으며, 북한은 유감표명을 서둘러 고쳐서 책임에서 빠져나갔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지뢰폭발 사건뿐이 아니다. 국가와 군대 그리고 기업이 비극적 사건마저 자신들을 전시하는데 이용하게 해선 안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기념물로서의 조각의 재검토


이 글은 희극과 비극의 기념비 조각이 목적과 관계없이 권력을 선전하는데 이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더 면밀하게 보기 위해 단순한 제작과 설치의 문제를 넘어서 ‘기념물로서의 조각’에 대해 더 자세한 언급이 필요하다. 미술에서의 ‘조각’이란 일정한 덩어리를 가지고 공간을 점유하는 매체를 주로 지칭한다. 이런 원론적인 정의는 가장 기초적인것으로, 기념비적 속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조각의 위상이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에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반미학’에 수록된 ‘조각영역의 확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조각영역의 변천사를 통해 우리는 ‘기념물’로서의 조각은 어떻게 위상이 변화되었는지 반추해볼 수 있다. 먼저 ‘크라우스’는 “조각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범주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정된 범주”[각주:5]이며, “자신의 고유한 내적 논리, 즉 고유의 법칙체계를 갖고 있다.”[각주:6]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조각(을 비롯한 매체)은 역사, 문화적 조건들에 의해 ‘한정’되는 범주에 지나지 않는다. ‘크라우스’는 19세기 후반이 오기 전까지 조각에는 ‘기념비적 재현’의 속성이 필연적으로 내재되어있음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조각의 법칙은 기념비의 논리와 불가분의 것으로 여겨져 왔”[각주:7]고, “조각은 놓여진 장소의 의미와 용도를 말하는 상징적 언어”[각주:8]가 되었다. 풍경과 건축의 의미를 코드화해서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조각’은 주체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관람자도 의도된 바를 위계적으로 전달받아야만 했다. ‘평화의 발’과 ‘강남스타일 조형물’은 ‘기념비적 재현’이라는 위계적 질서를 반복한다.


기념물로서의 조각에는 필수적으로 ‘대좌’가 포함되어있었다. 그것은 “실제 조각이 놓이는 위치와 재현적인 상징 사이를 중개하므로, 구조상 필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각주:9] ‘대좌’를 논점으로 이야기해보면, ‘강남스타일 조형물’에는 대좌가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좌는 하단부에 존재하는 ‘지구’로 변모한다. 이 경우에 대좌의 상실은 탈귀속성을 내포하지 않고, 제작 매체의 부수적 발전에 따른 변형일 뿐이다. ‘평화의 발’ 조형물은 좀 더 직접적으로 대좌가 등장한다. 따라서 ‘기념비적 속성’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이 가지던 ‘탈귀속성’은 두 조형물에는 포함되지 못한다. 물론 장소특정성이라는 담론에 의해 어떤 장소를 ‘특정’짓는 미술작품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이 경우 두 조형물은 장소와 어떤 상호작용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저 놓여질 뿐이다. 모더니즘 이후의 조각은 크라우스에 따르면 “상이하게 구조화된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또 다른 장 주변 위에 놓여 있는 유일한 하나의 개념”[각주:10]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기념비 조각이 잔재할 수 있는 것은 후기모더니즘 이후의 상황에서 조각이 해체되거나 파생되지 않고, 하나의 개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념비 조각’의 제작자체는 문제삼을 수 없다. 그것이 정말 올바른 ‘기념’의 방법인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


‘강남스타일 조형물’과 ‘평화의 발’은 모두 건축보다는 풍경에 밀접하다. ‘코엑스’와 ‘평화누리 공원’이라는 공간을 점유한 덩어리들은 각각 관광자원으로서의 ‘유명세’와 국가의 안정화를 위한 ‘통일’이라는 환상을 드리운다. 비풍경과 비건축의 사이에 존재하는 조각은 여전히 모더니즘 이전의 제한적 조건이었던 장소의 의미와 용도를 말하는 언어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장소’보다는 사회, 정치적으로 형성된 권력의 장소에 가깝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기념비 조각’은 제작 주체의 권력이 존재하는 장소를 상기시키는데는 효과적이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달하는데는 게으를 수 밖에 없다. 장소특정적 미술의 저자 ‘권미연’은 “작품은 더 이상 명사/오브제가 아니라 동사/과정을 추구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관람 행위의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대해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비판적인 예리함을 갖도록 자극”[각주:11]하고, “미술 작업과 그 장소 사이의 특정적 관계”[각주:12]는 “관계의 물리적 영구성에 근거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될 수 없는 순간적인 상황으로 경험되는, 고정되지 않는 비영구적 관계임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 보증된다”[각주:13]고 말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코엑스’와 ‘평화누리 공원’의 ‘기념비 조각’은 어떤 비판적 예리함도 촉구하지 못하며, 그 조형물 자체를 거부하는 사유를 통해서 비판적 예리함을 가질 수 있다. 두개의 조형물은 영원한 기념을 위해 설치되었기 때문에, 비영구적 관계와 과정은 도태된다. 


동시대의 기념비 조각은 그 자신의 본래 목적인 사건에 대한 ‘기념’과 동시에 우리가 ‘공공성’이라고 말하는 영역에 연결된다. 두 조형물은 애석하게도 추상적 형태라는 조건을 빼고 ‘플롭아트’에 걸맞는다. ’공공미술’의 부정적 면모를 비꼬는 용어인 ‘플롭 아트’는 풍경과 건축의 조건, 특징을 무시한 채 자신의 외형을 강조하기에 바쁘다. ‘플롭아트’는 크기와 규모, 제작의 이유말고는 어떤 점도 ‘공공성’을 드러내는 특징을 가지지 못한다. 이들의 공공성은 “단순하게 그들이 야외에, 즉 ‘개방성’을 가지며 물리적 접근에 제한이 없는 장소”에 존재하기에 부여된다. 플롭 아트는 물리적 장소를 압도하고 그 조건들을 망각시킨다. 예를들어 ‘강남스타일 조형물’에서 우리는 ‘강남시’나 ‘코엑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포토존의 기능만을 수행한다. ‘평화의 발’은 ‘평화누리 공원’의 장소적 의의에 부합하는 척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은 ‘통일’이나 ‘평화’에 대해 단 한마디도 던질 수 없기에 오로지 비극의 사건을 결정화하는데 급급하다. 적합한 목적의 기념비 조각이자 공공미술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공공성’이나 ‘장소성’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무게감만을 보여주며 설치된 작업은 “기껏해야 일률적으로 규격화된 주변 환경에 그럴듯한 장식적 효과를 부가하여 산뜻한 시각적 대비를 제공”[각주:14]하는데 그치며, “최악의 경우 그것은 지배계급의 권력과 부를 기념하는 텅 빈 트로피, 곧 기업이나 건축의 장신구”[각주:15]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기념비 조각은 플롭 아트의 구상적 반복이 되어버렸다. ‘플롭아트’로 현현하는 ‘기념비 조각’은 용어의 부정적 함의와 마찬가지로 ‘텅 빈 덩어리’일 수 밖에 없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기념’할 수 있단 말인가?


결론 


희극의 ‘손’과 ‘비극의 ‘발’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그 제작주체들에게 그것은 틀림없이 예술이다. 사건을 기억해내기 위해 그들은 기념비 조각의 퇴락한 형상을 재호명한다. 기념할만한 형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누구도 그 기념비 조각앞에서 진심으로 기쁨과 애도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 사건들은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지겹도록 소비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의도된 감정을 낳는 기념비 조각은 이데올로기의 현현에 불과하다. 이 시대에도 기념물은 끊임없이 제작되고 소비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 조각은 자신을 단순히 예술이 아닌 존재로만 소비시킬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예술은 고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카프카가 말하는 얼음을 깨는 도끼에 가깝다. 그러나 이 글에서 논의했던 두 개의 기념비 조각은 어떤 얼음도 부수지 못한다. ‘손’은 국가의 경제발전에 대한 맹목성을 보여준다. ‘발’은 군대의 한계와 분단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각하게 한다. ‘손’과 ‘발’의 조각은 경제와 안보에 자신의 예술적 권위를 부여한다. 4억과 2억의 제작비는 비난의 대상임과 동시에 아득히 먼 가치의 표상이다. 이미지를 헌신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들은 부득불 기념비 조각의 형태를 선택했다. 사진, 디자인과 같은 납작한 이미지들은 사건 자체가 이미 포함하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념비 조각은 중력을 상기시키고, 이내 ‘힘’과 ‘권력’ 그리고 ‘자본’을 표상하는 구조물로 보여진다.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데 적절한 이미지 구성하는 방법을 나의 짧은 식견으로 제시하긴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결과들이 옳은 방향은 아님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손’과 ‘발’은 기념비 조각이 ‘낭떠러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술의 끝자락에서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형식만을 담보로 생존하고있다. 5년, 10년 뒤에 그 기념비 조각에 서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까? 제작 주체가 의도했던 바는 성취될 수 있을까?


by. 하마



  1. 기념비 조각은 ‘장소’ 나 ‘사건’의 의미를 규정하고, 정치적으로 선점하려는 목적에 의해 흔히 제작된다. 기념비 + 조각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북한미술에서 흔히 사용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과 거대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나 사변들을 후세에 길이 전하여 교육하기 위하여 만든 조각.”이라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기념비 조각’ 자체는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본문으로]
  2. 동아닷컴 기사 - http://news.donga.com/3/all/20151109/74665732/1 [본문으로]
  3. 같은 기사 [본문으로]
  4. 국방일보 기사 -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51224&parent_no=12&bbs_id=BBSMSTR_000000000004 [본문으로]
  5. 로잘린드 크라우스, ‘조각영역의 확장’, 박신의 역, 할 포스터 편집, 『반미학』, 현대미학사, 예경, 1993, 69p [본문으로]
  6. 같은 책, 69p [본문으로]
  7. 같은 책, 69p [본문으로]
  8. 같은 책, 69p [본문으로]
  9. 같은 책, 71p [본문으로]
  10. 같은 책, 75p [본문으로]
  11. 권미연, ‘장소 특정적 미술’, 김인규-우정아-이영욱 역, 현실문화, 2013, 39p [본문으로]
  12. 같은 책, 39p [본문으로]
  13. 같은 책, 39p [본문으로]
  14. 같은 책, 105p [본문으로]
  15. 같은 책, 105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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