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유령이 된 사진




보통 사진은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진술의 발달과 그에 수반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누구나 개인적인 사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 카메라로 이미지가 무한히 생성되는 요즘도 일반적인 관심은 카메라의 '화소'에 있다. 자신이 찍고자 하는 대상을 얼마나 선명히 그대로 사진 이미지에 동결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바로 '화소'이기에 우리는 그 정도에 기대어 사진기를 선택하고 또, 이 기대치에 순응하기 위해 화소는 점점 높아진다. 너무나 선명한 이미지 때문에 오히려 사진은 '박제'로 남아버린다. 


죽음이 기억되는 두 가지 방식을 '박제'와 '유령'으로 본다면, '박제'는 육체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은 것을 '부정'하며 기억하는 방식이다. 또한, 죽은 것을 정복하고 그것을 내가 가진 '소유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다. 요즘의 선명한 일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그 사진들은 개인이 가진 '추억'이나 '기억'을 '소유물'처럼 동결시키고 '박제'해서 남긴다. 여기에 대립해서 선명하지 않은 이미지들은 '유령'으로 볼 수 있다. '유령'은 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박제'가 죽음을 부정한다면, '유령'은 죽음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선명하지 않고, 물질이 아니기에 우리가 기억하고 묘사하면서 말해야 한다.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시대에서 선명한 '물질'이 아닌 흐릿한 기억과 추억은 소외된다. 따라서 '선명한 사진'은 사람들에게 선택되었다. 또한, 사진이 '세계'와 '사물'을 그대로 담아서 보존할 것이라는 기대도 지속하여 왔다.


OCI 미술관에서 보게 된 이진영 작가의 <습식 Wet Corrosion>과 <앵프라맹스 Inframance> 사진 작업은 '유령'과 같다. 이진영 작가의 사진 속 이미지들은 흐릿하다. 인물 사진은 이목구비만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다. 사진 위로 물에 젖은 흔적이나 하얀 점들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흐릿하고 오류가 있는 것 같은 사진이지만 분명히 내 눈을 이끌고 있었다. 나는 작가의 작업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었다. 이진영 작가의 사진이 왜 '유령'과 같은지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가 선택한 '작업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최근작에서 '암브로타입'이라는 방식으로 사진을 인화한다. 콜로디온 습판법의 한 종류이기도 한 '암브로타입'은 '콜로디온'이라는 용액을 이용해서 '유리판'에 상을 떠오르게 만드는 사진술이다. 사진의 역사에서 '칼로타입'은 '종이'를 사용했지만 '선명성'을 가지지 못했다. 여기서 콜로디온 습판법은 '유리'를 사용해 '선명성'을 높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진영'작가는 이 작업방식이 추구한 가치와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이끌어낸다. 오히려 흐릿하고 모호한 흔적으로 사진을 보이게 만들어서 자신의 사진을 '과거'의 작업방식과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낸다.



작자미상 혼 연주자 - 암브로타입

암브로타입 사진의 정석을 보여주기 위해 참고한 사진


'암브로타입'은 '콜로디온' 점액질 용액을 이 작업방식에 주재료로 인화한다. 이 재료는 빠르게 건조되는 특징이 있어서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며 노출을 시켜야 원하는 상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축축한 상태는 사진을 찍으면서 '건조'되어 날아가지만 이진영 작가는 의도적으로 '젖어있는' 흔적을 남기고, 흐릿하게 만든다. 암브로타입 사진의 정석과 달리 이진영 작가의 사진은 젖어있고, 먼지가 묻으며, 손이 남긴 흔적까지도 모두 상위에 띄운다. 이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진의 기능을 퇴색시킨다. 작가는 '흔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이 실제로 젖은 생명(Wet Life)이 듯 촬영과 현상 내내 젖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암브로타입은 마치 생명이 체온을 지키듯 습기를 내내 보존해야만 한다. 장노출과 현상 등을 거치는 아날로그의 기술적 한계와 번거러움에도 불구하고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미세한 긁힘이나 자국, 먼지까지 주요 요소이자 창작의 근원이 되었다."



습식 Wet Corrosion_Ambrotype_ C-Print_ 48.5 x 41.5cm, 2010


피사체가 있는 사진의 경우 선명한 사진이라면 분명히 인식되었을 '사물', '인물', '풍경' 등이 사진에 담겨있다. 하지만 그 피사체들은 그것이 존재했었다는 '흔적'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확실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는 사진은 '확실한 것'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 이진영 작가의 사진은 그 흐릿함으로 인해 사진의 속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게 만들며 사진 촬영 과정 자체를 생생히 드러나게 한다. 이것은 작가가 사진이 담는 '피사체'보다도 사진을 촬영하는 '방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방법'에 집중하는 작업 특징은 2007년 전작 <Retrace>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Retrace>는 '스캔'하여 '복사'하듯이 사진을 촬영해 보여준다. 이 작업에서도 사물을 평면에 띄우는 '스캔'방식을 사진과 비교하면서 '방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습식 Wet Corrosion_Ambrotype_ C-Print_ 48.5 x 41.5cm, 2010



습식 Wet Corrosion_Ambrotype_ C-Print_ 48.5 x 41.5cm, 2010



습식 Wet Corrosion_Ambrotype_ C-Print_ 48.5 x 41.5cm, 2010


<습식 Wet Corrosion> 시리즈 중의 한 사진은 '카파' 옷을 입은 인물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사진에서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은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카파' 상표가 전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사진이 렌즈 앞의 피사체를 확실하게 담아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상표는 나에게 '바르트'가 정의하는 '푼크툼'이다. 작가는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쉽게 판단하도록 보여주지 않는다.  <앵프라맹스 Inframance> 작업 중에서는 유리위에 손으로 자국을 낸 것 같은 작업이 보인다. 이것을 잉크젯으로 확대 인쇄하자 '추상적'인 이미지로 떠오르게 된다. 그녀의 작업이 계속해서 왜곡될 수 있고, 뚜렷하지 않은 흔적, 기억처럼 보이기에 이 작업은 다른 작업들보다 더 신중히 보게 된다. '추상적'이미지로 변한 사진 속에는 아무 피사체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하얀 동그라미 하나와 엑스자로 교차하는 선 두 개가 전부다. 이것을 피사체라기보다는 사진 인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작가는 사진에 포착하기 때문에 놀랍다. 위의 작업으로 인해 더는 작가의 사진은 '현실포착'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앵프라맹스_Collodion-4x5inch-Wet-Plate-Negative-Acrylic-Plates-LED-lighting-Sheet-Iron-126x96x15cm-2014-300x272



앵프라맹스_-Inkjet-Print-from-4x5-inch-Collodion-Wet-Plate-negative_-124.5x95cm.2014



앵프라맹스_-Inkjet-Print-from-4x5-inch-Collodion-Wet-Plate-negative_-124.5x95cm.2014


앞에서 나는 유령을 죽음이 기억되는 방법으로 말했다. , 그것은 흐릿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살펴본 이진영 작가의 작업은 '흐릿한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은 '유령'으로 변한 사진이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작업은 이전 시대의 것을 차용하지만 새로운 변모를 모색하고 있고, 그 변모를 통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사진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있다. 이 작업을 흥미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흐릿한' 사진 작업들이 일부러 흐릿하게 의도되어 촬영했지만 흐릿함을 의도하기보다는 상이 떠오르는 과정에서의 '실수', '상처'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흐릿함'에 집중하고 흥미를 느낀다. 이런 이미지들은 첨단 기술로 무한 복제되는 사진이미지를 경계하게 한다.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자 하는 선명한 사진도 중요하지만, 사진 본연의 발전방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사진의 촬영과정에 집중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 by. 하재용


- 사진 출처 : 이진영 작가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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