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초옥' <금성나이트 Episode 1 - 그대로 그렇게> 코드화 된 기억
'고초옥'
<금성나이트 Episode 1 - 그대로 그렇게>
코드화 된 기억
1월 29일 세운상가에 있는 '300/20'에서 '시간'을 구매했다. '시간'을 구매한다니 참으로 생경한 일이다. 내가 구매한 시간은 '고초옥' 작가의 <금성나이트 Episode 1 - 그대로 그렇게>라는 작품이다. 나는 작품의 총 시간 120분 중 10분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글로 내가 구매한 10분이 어떻게 생각되는지 쓰려한다.
'선착순'으로 12명에게 한정된 시간 에디션을 판매했기 때문에 나는 일찍 도착해서 기다렸다. 다소 어색한 공간에서 나는 첫 시간 구매자가 되었다. '10분'을 구매한다는 보증서와 함께 작가의 10분은 나에게 귀속되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8시 30분이 되어 입장을 하게 되었다. 안내인을 따라서 '대기석'이 있는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음산한 분위기의 대기공간은 나를 초조하고 긴장되게 만들었다. '대기석'에 앉자 의자 밑으로 노래가 새어나왔다. 노래는 의자를 때리며 내 둔부로 충격을 주었다. 나는 더 흥분된 상태로 경직되어있었다. 왼쪽에는 맥주 페트병이, 오른쪽에는 '나이트'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대기석은 나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보게 될 작업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지나고 안내인이 나와서 입구로 안내를 시작한다. 안내인은 작가였다. 작가가 들고있는 손전등의 빛에 기대서 '세운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두운 상가 건물은 마치 동굴같은 느낌을 줬다. 작가 본인은 자신의 '기억'을 구체화한 작업의 안내자로 행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가 건물이 작가의 '기억'의 '동굴'로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동굴의 끝에는 노래 소리와 나이트 조명, 춤추는 여성이 있었다.
춤추는 여성은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쉬지않고 움직인다. 여성의 밑으로 반짝이는 나이트 조명도 계속 회전하면서 함께 춤을 춘다. 조명과 여성이 계속해서 흔들리기에 뚜렷하게 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중간에 '펜스'가 있어서 '나이트'의 풍경은 저 멀리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을 보기만 할 뿐 그 안으로 들어가서 체험할 수 없다는 점을 시각화한 전략으로 보인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에 답답하고 밑에서 회전하는 조명은 공간의 한 부분만을 밝히고 있다. 관람자는 춤추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같이 춤을 추고 싶거나, 보고싶기만 하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어찌됐든 작가가 시공간에 재현한 '기억'이 더 모호해져간다. 기억은 관람한다는 사실만을 뚜렷하게 만든다.
작품을 볼 수록 '기억'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각자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기에 작가의 감정은 우리에게 와서 미끄러진다. 여기서 나는 이 기억이 '코드화'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총 '120 분'의 시간과 '300/20'이라는 공간에 작가의 기억을 현상해 하나의 '코드'로 만들었다. 코드화된 기억은 실제 설치와 퍼포먼스로 구체화된다. 동시에 그것은 이미지가 된다. 이미지는 다시 관람자에게 '코드'가되어 읽혀지게 된다. 계속되는 변화에서 기억의 '기의'는 잊혀지고 코드의 교환 속에서 '의미작용'은 미끄러질 뿐이다. 따라서 작가가 표현하는 이미지인 '기억 속 나이트'는 기표로 그 나이트에 대한 작가의 인상과 감정은 '기의'로 자리잡는데, 수용과정에서 관람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기대서 '기억 속 나이트'를 자신만의 '기의'와 결합시킨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안정감'을 찾고자 한다고 밝힌다. 각각 관람자에게는 '안정감'보다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안정감' 자체는 <금성나이트>에서 전적으로 작가의 기억과 동일하게 흡수되지 않고, 각각 관람자에게 각인된 '기억 속 나이트'는 계속해서 변이된다.
'기억'이란 우리의 '뇌'에 축적되고, 버려지고, 왜곡되면서 만들어진다. 기억은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기억하는 이미지와 동시에 그 순간의 감정을 저장한다. 기억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다. '고초옥' 작가는 유년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나이트클럽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기억에서 꺼내 '시간'위에 현상한다. 미술에서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작품제작은 그것을 '공적기억'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각 개인에게 공유된 것으로 보고, '알바흐'는 이를 이어 받아 '집단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개인의 기억 속에 본질적으로 '집단기억'이 내재되어있다고 말한다. 또한 철저한 개인 기억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고초옥'작가의 작업은 '집단기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단편이다. 그 이유는 그의 작업안에 나이트 클럽의 구체적인 요소들이 부분적으로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방, 입구, 객석, DJ의 무대, 춤추는 곳)도 물질적으로도 배제되어 나타난다. 또한, 나이트 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감정, 기분들도 망실된다. 따라서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게 저장된 기억은 일종의 '감각기억'으로 '눈'과 '귀'를 통해 저장되어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생'되었다. 여기서 작품을 보는 '관자'들은 작가의 개인적 기억을 바탕으로 '집단기억'을 형성하게 되는데 '집단 기억에서 장소성은 우리의 기억을 보다 더 구체화 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 장소에 대한 특정 (사회적) 시간과의 결속을 이루어냄으로서 보다 더 구체화 된 기억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이번 작업의 '300/20'이라는 장소성과 '10분'으로 제시된 시간이 결합되어 관람객에게 구체적인 '기억'을 자리잡을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집단기억'은 '코드화'와 동일한 것으로 어떤 상징성을 지닌 형태로 작업이 변하게 된 것을 말한다. 동시에 <금성 나이트>의 공간과 시간은 각각 개인의 '사적 기억'으로 편입되면서 기존에 그들이 가진 생각과 기억에 의해 의미가 변질되는 것이다. 1
'기억'의 측면과 마찬가지로 '시간 거래'는 이 작업의 중요한 점 포인트다. 보통 '거래'란 어떤 물질을 같은 가치로 생각되는 물질과 바꾸는 것이다. 흔하게 우리가 아메리카노를 2500원이라는 돈의 가치와 동일화시켜 거래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또한 실체가 없는 '데이터'를 거래하기도 한다. 역시 '시간'도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시간'은 우리가 단순히 생각하면 영화를 보는 것,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작가가 12명의 소장가에게 제공하는 10분 씩의 시간은 그 소장가들의 10분과 거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구매하는 것에 '5000원'이라는 요금이 소모되었지만 나는 금액의 수 보다는 동일한 '시간을 거래하는 것'을 더 가치있는 일로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미지를 보기 위해 소비하는게 아니라 작가의 시간을 탐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나 공연은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시간을 거래한다는 것이 특별하게 와닿는다. 한정된 '10분'은 개개인에게 뚜렷하지만 동시에 모호한 '기억'이 된다.
시간은 항상 '기억'속에서 무한히 동결된다. 그것을 기억해내고 어떤 행위로서 풀어낼때 비로소 그 기억의 시간은 다시 압축되서 나타난다. 압축되어 제시된 기억의 '시각화'를 꾀하는 방법은 부동의 이미지와 그 부동의 이미지의 연속을 이용한 '영상'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 '고초옥'작가의 작업은 공간 속에 실제사물과 인간을 침투시켜 '설치',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타 이미지보다도 '현존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 촉각적, 시각적 접촉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된다. 동시에 관조하기만 해야하는 제약이 주어지기에 단순한 이미지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환영'이상으로 현존성을 가지지만 결국 '환영'으로 귀결된다.
<금성 나이트>는 시각, 청각, 촉각이 조화되어있다. 매체적으로 설치, 퍼포먼스가 하나된 다원예술이다. 이것은 어떤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지 않는다. 단지 한정된 '시간'이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기억'이 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미끄러져 수용되어지는 '10분'의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왜곡되고 변형될까? 이 작업은 단순한 시각화에만 열중하지 않기에 새롭게 보인다. '시간'과 '기억'을 물질화하고 이미지화하는 행위는 작가의 '미시적'인 기억을 '서사적'인 코드로 변환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의 덧없음, 과거의 영광,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의 불만과 같은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한 작가의 '기억'에 부유한다. <금성 나이트>는 작가의 기억을 통해서 그것의 모호함을 깨닫게 하며, 각자의 시간의 소중함 - 이제 기억이자 과거가 될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작가의 기억속 '금성 나이트'는 시간이 흘러서 '회고'되는 것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상황을 상상하는데서 오는 막막함을 이겨내기위해 과거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억한다. 이 작업 역시도 작가 개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과거의 순간에서 위로받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대로 그렇게'라는 노래 제목처럼 우리는 항상 그냥 그렇게 변하지 않고 지금처럼 또는 예전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by 하재용
- 「기억과 이미지에 관한 연구」 한선정, 대구가톨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0~11p, 201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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