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정보과잉 시대의 '괴담' 이미지 [기획전 Review]
인사미술공간
'아무도 모른다'
'Nothing we could know'
2015, 2.6 - 3.8
정보과잉 시대의 '괴담' 이미지
요즘처럼 소문만 무성한 시대가 또 있을까? 국제사회, 정보사회는 우리가 지난 시절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루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실체적 사건들을 경험하기보다 오히려 SNS, 언론 보도, 웹상의 산재하는 익명의 텍스트, 미디어의 과잉정보에 빠져 흉흉한 소문들만 접하게 되었다. 정보는 더는 사실에 입각한 정보윤리가 작동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요구로 소비된다. 이런 사회는 건강한가? 피폐한 현대적 삶은 유토피아를 쫓지 않고 현실의 사건들을 소비할 뿐이다. 우리는 기실 올바른 정보 소비를 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정보 과잉의 행태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이미지(그러나 우리는 이미지의 어원인 imago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유령과 같다는 것을 안다)와 결합하면서 '실재감'을 얻는다. 마치 2D영화를 보다가 3D, 4D영화 보게 되었을 때의 거짓된 '실재감'을 말이다. 거짓된 이미지 정보가 만들어낸 '흉흉한 소문'들을 우리는 '괴담'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바로 오늘은 '괴담'의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어 '인사미술공간'에 도착했다. 이 공간에서 바로 '괴담'의 이미지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3월 8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신진기획자 4명이 합동 기획했다. 전시에서는 '괴담'이 어떻게 이미지와 만나서 실제가 되는지,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시각화하고 실험한다. 총 7명의 작가의 작업은 3층에 나눠 전시되었으며, 다양한 매체들(회화, 타이포, 영상, 오브제, 설치 등)이 있어 전시를 풍부하게 만들어낸다.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도 좋지만, 오늘은 앞에서 이야기한 '정보 과잉'의 측면을 다루고 싶다. 서술한다. 이미지는 어떻게 '괴담'을 만든 과잉정보와 하나가 되는가? 그리고 그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정보가 제한되던 시대에 괴담은 어떤 장소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들고 전달되었다. 즉, 실제 장소가 선행하고 소문이 뒤따랐다. 현대에서는 실제 장소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에 소문이 뒤따른다. 동시에 과다한 정보로 인해 무수히 전달되는 이야기들이 왜곡되면서 나중에 구체적 장소가 덧씌워지기도 한다. 이것은 조작되기 쉬운 사진, 영상 이미지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음으로 속이기 쉬운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괴담은 왜곡이 쉬운 '정보'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Mutation, 석수선, 디지털 프린트, 각 80x100cm, 2014(1층)
석수선, Mutation, 디지털 프린트, 150x210cm(5ea) 2015
인사미술공간에 처음 들어서게 되면 '석수선' 작가의 <Mutation>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작업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다. 작가는 에볼라에 대한 텍스트(무한히 산재하는 익명의 출처불명 정보)들을 조작한다. 사실적 정보인 병에 대한 것은 제거되고 오로지 죽음의 측면과 발병국의 대상화, 정치적 이슈로 전락하는데, 이 현상을 <Mutation>은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원래의 문장구조에 검은색 모자이크를 덧대거나 글씨 크기, 모양을 고의적으로 조절해서 '읽을 수 없게', '파편'만 읽게 유도한다. 텍스트를 왜곡하는 방식이 그런것이며, 이 작업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정보왜곡을 텍스트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텍스트가 역설적으로 허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얼마나 '정보'가 휘둘리기 쉬운지 보여준다.
새빨간 눈, 서평주, 신문에 아크릴릭, 가변설치, 2014
2층에 전시된 서평주 작가의 <새빨간 눈>을 비롯한 작품들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차이점은 '정보'의 종류에서 온다. '서평주'작가는 '신문'이라는 검증된 것으로 기대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한다. 텍스트는 물론이거니와 사진에 아크릴로 덧그리거나, 사진을 가리는 방식으로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 이는 텍스트와 부연 되는 사진이 떨어지기 힘든 존재이며 두 가지를 왜곡시켰을 때 더 현실성 있게 느껴지는 것을 보여준다. 교황이 아이의 하체에 입을 맞추어 축복해주는 사진을 마치 아이의 성기에 입을 가져다 대는 음란한 행동으로 왜곡하는 것, 여기에 '입맞춤'이라는 글자를 더해 신빙성을 더하는 것. 모두 우리가 읽고 소비하는 정보들이 얼마나 이미지에 휘둘리기 쉬운지 보여준다. 그러니까 <Mutation>과 <새빨간 눈> 작업은 정보의 시대에서 신뢰도는 물렁물렁한 것임을 풍자하고, 그것이 괴담으로 변질하기 쉽다는 것을 가시화해준다.
ETC, 강남수(水), 디지털 프린트, 가변설치, 2014
강남수(水), ETC, 디지털 프린트, 단채널 영상, 1분 51초, 1분 21초, 가변설치, 2014
풍자의 맥락은 지하의 <강남수> 작업으로 이어진다. 'ETC'라는 일시적 합의 기업이 만들어낸 브랜드인 <강남수>는 실제의 물이 담긴 페트병 오브제들과 영상으로 구성된다. 위의 두 이미지가 실제 사실을 조작한다면, 이 작업은 사실 자체를 재구성하고 실제 사물을 다시 제작한다. 한강에 대한 우려들과 걱정으로 만들어진 '녹조', '로봇 물고기'에 대한 소문을 허물고 'ETC'가 만드는 이야기로 바꿔버린다. 이는 '괴담'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실제 사실과 정반대의 전략을 통해 '부정적인 물'을 '생명의 물'로 바꾼다. 이는 한강에 대한 소문이나, 조작된 강남수나 결국 우리는 실제로 가서 확인하지 않기에 '말만 무성한'적으로 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는 문제가 괴담화 했을 때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무색한 것이 되는지도 알게 한다.
타다수 타카미네, 일본 신드롬 - 야마구치 편, 단채널 영상, 45분, 2012
<강남수>를 지나 일본 작가 '타다수 타카미네'의 <일본 신드롬 - 야마구치 편>을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45분의 비디오 작업인데, 일본 야마구치 현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일어나는 일상을 하나의 '극'으로 재현하고 촬영한 것이다. 일상의 다른 이미지들은 제거되고 사람들은 '마임'을 한다. 이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로 생각된다. 우리는 실제 일본의 상황을 느끼기 힘들다. 단지 보도와 소문을 통해 안다.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가 심어지는 것은 '원자력', '방사능'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후쿠시마'라는 장소와 결합하며 구체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그런 공포가 일본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으로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일상 속에서 일본인들은 어디서 들은(진위여부의 확실성이 모호한) 소문을 바탕으로 위험하지 않은지 묻는다. 심지어 수족관의 물고기가 어디서 왔는지까지,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들이 굉장히 담담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석주선'작가와 '서평주' 작가의 작업으로 사건의 정보(텍스트, 보도된 사실, SNS)들이 왜곡되고, 이미지와 결부되어 괴담이 되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ETC'와 '타다수 타카미네'의 작업으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가 '괴담'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보여주는지 확인했다. 이 네 작업 모두 일련의 '불안'들이 괴담이 될 때 본질이 얼마나 흐려지는지 보여준다. 각각의 이미지와 매체를 형성하는 구조는 다르지만, 그 방법이 같다. 어찌 됐든 이 괴담의 현상들은 지나치게 쏟아지는 정보들 때문에 일어난다. 그것은 '입' 혹은 'SNS'와 같은 익명의 방식으로 퍼진다. 그리고 '실체적 삶'에서 허구의 이야기까지 괴담이 촉발된다. '언술'에서 '착각의 이미지'와 결합하는 전략을 통해 1차 원본은 지워지고 본질이 흐려진 이야기가 전달된다.
전시의 나머지 작업들은 실제 사건보다는 작가들에 의해 구성된 '괴담'을 다룬다. 앞에 설명한 네 작가의 작업이 실제 사건을 재구성, 왜곡했을 때 전혀 다른 의미가 나타났듯이 '괴담'에 선행되는 '사건'이나 '장소'도 결국 이야기 자체에 묻히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실제로 일어났거나, 그렇지 않은 것들 모두 과다한 정보의 바다(인적, 기술적 네트워크)에 의해 '신화'가 돼버린다. 이제 이 전시에서 제시하는 '괴담'이 어떻게 구성되고 일상에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기획자들은 괴담을 '실체 없는 이미지 정보에 구체적인 시공간이 덧입혀지면서 목을 움츠리고 주변을 살피게 하는 기묘한 이야기'로 정의한다.
'괴담' 자체는 이 전시의 구조를 쌓는 요소이며, 7명의 작가의 다양한 이미지와 전시장소가 결합해 존재론적으로 우리 눈에 제시되는 기묘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소비하는 괴담이 얼마나 헛된 건지, 비본질적인지 깨닫는다. 이 전시를 통해 괴담이 작동하는 방식을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전시 초입부터 일종의 바이러스가 된 이미지들은 망막을 타고 전염된다. 실재, 비실재의 세계보다 '지금 여기에' 실체화된 허황된 이야기만을 현실로 보게 한다. 그것이 구체화 된 것은 우리가 이미지를 실제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Mutation>과 <새빨간 눈>, <강남수>, <일본 신드롬 - 야마구치 편>은 '실제'로 착각되게 이미지를 조작하고 있어서 '괴담'이 변해도 우리가 지각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이상 정보가 아닌 흉흉한 소문들은 그 사건과 장소에 대한 본질을 흐리고 그저 일상적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불안한 것을 익숙한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는 '괴담'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이면을 드러내고, 본질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올바른 정보들을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다면 '괴담'의 허점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한한 정보가 우리의 판단능력을 무색하게 하므로 본질을 파악하는 게 어려운 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의 현대적 삶은 정말로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시대지만 동시에 <아무도 모른다>
by. 하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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