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세

막다른 곳

합정지구

2015. 3.27-4.19

 


 

미완의 붓질과 소외된 풍경

 

도시풍경은 익숙한 듯 생경한 순간이 가득하다. 작품으로 눈에 비추어진 세부적인 요소들이 들춰지는 순간에는 낯설음에 흠뻑 젖는다. 작가 임진세의 도시풍경 역시 어디선가 보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낯설고 기이한 화면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번이 세 번째 개인전이라고 한다. 합정역에 새로 개관한 합정지구에서 열린 전시의 제목은 막다른 곳이다. 임진세 작가는 동시대미술에서 도시풍경화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영역에 기여하고 있다. 도시풍경화는 근대이후 우후죽순으로 개발된 도시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역할을 해왔다. ‘임진세작가의 작업은 웅장한 도시의 풍경이 아닌 주변부의 모습을 담는다. 골목이나 도로,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과 같은 곳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가 아니라 그 중심부에서 비켜서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안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담담하고 관조적인 필치로 그려져있다. ‘임진세작가는 언저리 풍경이라고도 말한다. 이 중심 밖의 풍경들은 생경함과 동시에 고독함, 안쓰러움을 느끼게한다.

 

 

임진세_청계천 데이트 Cheonggyecheon Dating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4

 

 

임진세_청계천 데이트 Cheonggyecheon Dating_캔버스에 유채_100×73cm_2014

 

그녀의 작업에는 다른 도시풍경화와 달리 인물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작업 속에서 택시기사는 풍경과 결합되어 보이기도 하고, 공원에 서있는 사람은 흙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분간이 어렵기도 하다. 그리고 <청계천 데이트> 작업에서는 한 쌍의 커플 혹은 여러 인간 군상이 형태만 알아볼법하게 그려져있다. 실제로 이곳은 아주 강렬한 빛이 물을 통해 반사된다. 일렁이는 수면덕분에 강렬한 에너지는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느끼게 한다. 그곳에 실제로 있을 때 우리는 격양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진세작가가 그려낸 같은 장소는 다르다. 그곳은 아주 끔직한 풍경으로 보인다. 청계천 다리 밑은 인공자연이다. 그곳을 비추는 빛은 곧 인공의 표상이다. 물과 조명과 사람은 본디 이질적인 요소다. 그것은 작가의 손끝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으로 그려졌다. 이 작업은 전시장 밖과 안에 두 점이 있는데 구도가 다른 두 작업 때문에 낯설음은 더 심해진다.

 

작가는 의 속성을 잘 다루고 있다. 담담하고 관조적인 필치에 묽게 발라진 유화가 그 점을 강조한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모든 풍경이 물에 젖어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작업에서는 시의 적절하게 조절하게 된 것 같다. 그녀의 붓질은 스윽 스윽 그어버린 것이다. 귀찮은듯도 하고 급한 것 같기도 한 필치는 마티에르를 최소화하지만 화면의 동적인 구성은 유지시킨다. 프레임 안에서 작가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공간(, , 하늘)을 꿈틀거리게 그려낸다. 다른 요소들은 조금 더 꼼꼼하게 붓질되어있다. 하지만 어느 한 구석도 완연하지 않다. 그녀의 작업은 용의 눈을 찍지 않은 것처럼 끝을 맺지 않는다. 이 미완의 풍경이 그녀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완전하면서도 칙칙한 채도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시각공해라고 걱정할 정도의 불편한 화면이 왜 시선을 이끌까? 나는 그 이유를 <폭풍 드라이브> 작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임진세_폭풍드라이브 Storm Driving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3

 

<폭풍 드라이브>는 추상회화처럼 극단적인 하늘색이 칠해진 풍경에 희미하게 붉은 색 점이 찍혀있다. 처음 이 작업을 보았을 때 쉽게 이것이 무엇을 그린건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계속해서 작업을 바라보면 어느새 눈앞에 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붉은 점은 바로 백라이트였다. 차를 인지하자 주변의 풍경도 어느새 익숙해진다. 마치 내가 폭풍 속에서 운전하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이 작업은 보는이의 시선을 단번에 갈취해버린다. 여러 방향으로 사정없이 그어진 붓질은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든 폭풍 속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주 담담하지만 고조되는 긴장감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관람객의 시선에 의해 작업은 완성된다. 그것이 미완의 붓질이 찾아가려하는 길인 것이다. 도로위의 운전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는 것이 이 작업이라면 <강변북로>는 달리는 차가 가득한 강변북로를 내려다보는 구도를 취한다. 도로 옆 강은 칙칙하게 꿈틀거린다. 바쁘게 도로 위를 벗어나려하는 차들은 건물이 가득한 도시중심으로 갈수록 옅어진다. 도로와 차가 분간이 안될 지경이다. 나는 임진세작가의 작업에서 이렇게 지워지는 듯한 요소들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차도 동물도 화면 안에서 지워지고 풍경과 하나가 되버린다. 작가는 "사람이 시멘트 벽 속에 스며들어 도시화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인간을 숙주로 삼은 에일리언 같은거죠. 사람이 도시를 계획해서 만들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의도를 하건 안하건 사람도, 생물도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어서 도시에 기생하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라고 말한다. 기생하듯 도시 풍경에 붙어버린 인물들은 한편으로 굉장히 소외되어있다.

 

 

임진세_강변북로 Gangbyeon Expressway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13

 

확실히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이전의 작업에 비해 좀 더 단단하다.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완급조절이 가능해졌달 까? 그녀는 계속해서 스스로의 주변을 그려왔다. 마치 유물을 발굴하듯 일상에서 소외된 풍경들 속에서 그녀는 새로운 순간을 낚아낸다. 우리가 여가를 위해 혹은 이동을 위해 또는 거주지를 짓고 남아버린 골목과 같이 생명력이 죽어버린 고독한 풍경을 작가는 담담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손끝에서 발화된 붓질이 생명력을 되살리고 있다. 요동치듯 움직이는 자연은 본래의 모습과 다르다. 오히려 생명 있는 것들 혹은 그들이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것들이 풍경의 고독함을 담아버린다. ‘임진세작가의 작업은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화다. 붓질 때문에 자칫 가상성이 심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끝맺지 않는 붓질이야 말로 관람객의 경험과 합쳐졌을 때 현실을 되돌아보는 창이 된다. 리뷰의 이미지와 실제로 보는게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나는 꼭 그녀의 작업을 전시장에서 보는게 좋다고 말하고싶다.

 

by. hama

 

사진출처 - neo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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