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

신한갤러리 광화문

2015.11.17~2015.12.28


인코딩된 실재




드로잉은 자유분방하거나 쾌활해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업으로 하지 않아도 언제나 무의미한 끄적임들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낙서들은 쉽게 파기된다. 우리는 세계를 굳건한 진리로 구성된다고 믿기때문에 불안정한 그림들은 쉽게 버려진다. 드로잉역시 회화를 구성하기 위한 기초단계 즉, 스케치로서 받아들여져왔다. 하지만 지금의 드로잉은 매체 특유의 빠른 적응력덕분에 많은 작가들이 선택하고있다. 신한 갤러리 광화문에서 열린 ‘박광수’작가의 개인전 ‘검은바람, 모닥불 그리고 북소리’에서도 드로잉을 기초로한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박광수’작가의 드로잉은 세계를 인식하고 재배열하려는 전략으로 생각된다. 전시장에는 총 15편의 드로잉-애니메이션이 불명확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상영되었다. 동시에 전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북소리가 전시장을 휘감고있었다. 작가는 왜 흑백의 드로잉을 프레임의 낱결이 결집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까?


도입부에서 영상기법하나를 설명하면 ‘박광수’작가의 작업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진다. ‘로토스코핑’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법은 작가의 애니메이션 대부분에서 사용된다. 간략한 정의로 ‘로토스코핑’은 ‘사람의 움직임을 영화, 카메라 등으로 촬영한 후 그것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그리는 기법’이다. ‘박광수’작가는 “내가 매일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의 이면에 대한 환타지가 드로잉의 내용을 구상한다”고 밝힌다. 세계의 이면, 기저에 내재된 환상향은 매 전시와 작업마다 다르게 풀이된다. 하지만 드로잉을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하는 전략만큼은 지속되어왔다. 작업은 크게 세 가지[1. 드로잉 원화, 2. 원화를 줌인, 줌아웃하거나 화면을 훑는 애니메이션, 3.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로 구분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따로 드로잉 원화가 공개되지는 않았다.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전경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전경


흥미롭게도 ‘박광수’ 작가의 쿤스트독에서의 지난 개인전 ‘Walking in the dark’에 전시된 작업의 다수가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되어 이번 전시에 상영되었다. 따라서 같은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려 매순간 다른 작업을 만드는 작가의 방법론이 전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작업을 반복하는것은 진부하지만 다행히 작가는 드로잉을 애니메이션으로 인코딩[각주:1]해 신선함을 유지한다. 보통은 같은 영상을 다른 기기로 혹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보기위해 인코딩하지만, 작가는 드로잉을 재검토[각주:2]하거나 이번 전시에서 다시 작업하기 위해서 ‘북소리’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인코딩했다. 역시나 드로잉에서 변환된 애니메이션은 평행선에 존재하는 다른 작업이다.




불사람 행진,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불사람 행진,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불사람-행진>작업은 로토스코핑을 이용해 세계를 인코딩하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성취한 작업이다. 열정, 칼로리 혹은 생명을 불태우며 출근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촬영된 영상을 작가는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했다. 실제영상에서 우리가 직시하지 못하는 작가만의 이면적 상상이 대상의 외연을 뚫고나와 타오르는 불로 형상화되었다. 재밌는 것은 출근길임을 단번에 인지하기 힘들게 길과 주변배경이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상을 집중시켜 원래이미지에서 떠내는것은 작가의 다른작업에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날씨와 손> 작업에서는 일기예보하는 아나운서의 ‘손’만 두드러지게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떠냈다. 마치 수화를 하는 듯 보이는 일기예보 손짓은 어머니의 기일과 같은 날짜에 방영된 일기예보에서 선택한것이다. 예견할 수 없는 ‘죽음’과 예측가능하게 보이는 ‘날씨’는 사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작가는 서로 연관없는 어머니의 기일과 일기예보 동작을 로토스코핑을 통해 연결시킨다.




날씨와 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날씨와 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날씨와 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작가는 실제영상만을 사용해서 작업하는것이 아니라 3D와 게임장면도 사용했다. <구르는돌>, <검은새> 작업이 3D툴의 강의영상을 가지고 만든 작업이고, <넘어지는 남자>는 GTA라는 게임 속 캐릭터의 동작을 따온것이다. <구르는돌>은 3D툴에서 ‘구’가 ‘돌’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강의영상을 재구성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동작에서 회전하듯 구르는 돌은 실제로 돌이 되기위해 가상공간에서 꾸며지고있었다. 3D는 실제의 3차원이 아니라 2차원 평면에 3차원 즉, 현실감을 투사하기위한 눈속임이다. 가상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은 3D의 평면-입체물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가지고오면서 두드러진다. 작가의 변환작업은 결국 가상(3D)에서 가상(평면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는 연속이다. 하지만 실재와 가상이 구별되지 못하는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런 3D툴을 재구성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자 필연적인 선택으로보인다. <검은새> 작업역시 3D툴 강의영상에서 출발했다. 이 작업은 화면속 검은새가 프레임밖으로 나가는 단순한 동작만을 가진다. 흥미롭게도 다른 애니메이션의 사이사이에 삽입된 이 작업은 계속해서 반복재생된다. 그것은 로토스코핑의 출발점인 드로잉, 변환된 애니메이션 그리고 상영된 프로젝터가 모두 단순히 이미지임을 말하는것은 아닐까? <허공의 동전>작업은 전시공간을 매개하면서도 작가만의 시그니쳐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작업은 전시장소인 ‘신한갤러리 광화문’ 옆의 금융역사박물관에 쌓인 동전에서 시작되었다. 인셉션의 멈추지않는 팽이처럼 동전은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허공의 동전>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물리현상들이 작가가 손으로 하나하나 그린 세계속에서 구현된다는 것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넘어지는 남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넘어지는 남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넘어지는 남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넘어지는 남자,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전시된 애니메이션은 [기초된 이미지-> 드로잉 -> 애니메이션]이라는 규칙으로 형성되었다. 이렇게 인코딩을 거치는 과정에서 흑,백의 선,점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는 매끄러운 동작보다는 조잡하고, 불안정하며 꿈틀거리는것처럼 보인다. 프레임과 프레임사이의 이질감, 삐걱임 혹은 꿈틀댐은 아이러니하게 작업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계속해서 교차되는 프레임의 연속체속에서 원래 이미지의 외연과 의미는 모호해지거나 분명해진다. 작가의 작업은 아주 단순한 노동집약적 드로잉과 그것을 애니메이션의 프레임으로 더 집약적으로 그려낸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인코딩, 매드무비와 같이 무언가를 변환하고 기존의 것과 다르게 만드는 것임이 분명하다. 작가는 본인의 드로잉-애니메이션이 새로운 현실을 제안하고 안내하는것처럼 소개한다. 실제로 인코딩 전략은 실재의 이미지를 가상의 판타지로 재조립하는데는 성공한것으로 보인다. ‘박광수’작가의 드로잉-애니메이션은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노동집약적인 손의 육화된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개인적 시각에 의해 질료로 포착된 영상, 이미지들은 작가의 ‘회칼’[각주:3]에 의해 베어져 판타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 판타지는 관람자 각각에게 무수히 다른 판타지로 다시 변환될것이다.



검은 새,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검은 새, 드로잉 애니메이션 반복재생, 2015



드로잉 애니메이션 설치전경



by. 하마

  1. 인코딩Encoding의 원래 의미는 ‘코드화’, ‘암호화’이다. 또한 흔히 영상작업을 변환시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나는 드로잉을 애니메이션으로 혹은 영상을 드로잉으로 변환하는 작가의 전략을 인코딩으로 지칭한다. [본문으로]
  2. <숲에서 사라진 남자>가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 작업은 드로잉작업을 확대해서 보거나 훑어본다. 따라서 작가가 스스로 작업을 다시 되돌아보는 제스처로 보인다.) [본문으로]
  3. 작가의 2011년도 첫 개인전 <2001 : A SPACE COLONY>에서 공간을 베어버리는 ‘회칼’은 다른 작업에서도 지속되어 공간의 틈을 발생시키고, 작가 개인의 주술적 망막에 의해 재매개되는 세상을 열어내는 도구로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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