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이 수많은 발전을 거듭해온 지금 우리는 다빈치, 피카소는 알지만 우리네 작가는 알지 못한다. 이인성, 이상범등의 작가들을 우리는 아는가? 역사공부가 중요한 만큼 우리는 미술사 공부에 있어서도 우리의 작가들을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 할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우리네 작가 시리즈로 작가를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창 전시중인 한국 근현대 회화 전시에서는 우리의 명작회화들을 대거 볼 수 있다. 그 중 화가 '이인성'의 작품 또한 눈에 띄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은 이인성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이인성 (1912~1950)은 동시대 작가들이 50~60년대에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과 달리 1930년 일제시대에 조선의 지보, 화단의 귀재라고 불렸다. 한국근대미술의 도입기이자 성장기라고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 동안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작품에 대한 평가는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찬사와 동시에 비판이 함께 했다. 그가 두드러지게 추구한 ‘조선 향토색’이 일제가 조장한 ‘지방색’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어느 하나의 스타일에 안주하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하지 못했다고 비판받기도 했다. 이인성의 예술적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수채화’이다. 20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이인성만큼 수채화를 그렸던 화가는 드물다. 아직도 미술계에선 수채화는 볼모지나 다름이 없다. ‘수채화’를 다들 유화를 하기 전의 단계로 인식하기 때문인데, 이인성은 1930년대 ‘수채화’를 가지고 숱한 명작을 그렸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이인성은 ‘서동진’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서동진’의 ‘대구 미술사’에서 일하면서 18세의 나이로 1929년 제 18회 조선미전 수채화로 입선하고 연달아 입, 특선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투명, 불투명 수채를 혼용한 기법을 보여주는데 기량과 소재 모두 뛰어난 작업을 했다. 이인성이 선택했던 소재는 당시 급격하게 변하던 도시의 모습을 선택했는데, 작가가 느끼는 호기심이 작품에 담겨있다. 이후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 일본의 제전에 입상하고 수채화회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한다. 그는 수채화로 보여 주기 힘든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고 강한 콘트라스트, 그리고 불투명하고 짧으며, 단속적인 붓터치로 유화에 비교될 만큼 독특한 수채화를 발전시킨다. 




<여름 실내에서>와 같은 작품은 유화인지 불투명 수채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인데 이것은 수채화의 유화적 기법 적용 때문이다. 또한 이 당시에 수채화와 동시에 유화를 그렸는데 수채화적인 표현을 유화에도 적용했다. 그의 최초의 유화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가을 어느 날>에는 <여름 실내에서>에서 보이는 앙티 세른(anti-cerne)기법이 보인다. 이인성이 수채화를 계속해서 사용했던 이유는 당시 일본 화단이 투명수채화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회화적인 스타일을 지나치게 일본, 서구의 작가에 대입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 이유는 1920년대 작품인 <아네모네>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부터 그의 회화적인 스타일이 확립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인성의 전형적인 특징인 분할적 짧은 터치,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과감한 화면 구성, 강렬한 보색 대비가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인성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강한 특징은 ‘조선 향토색’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의 민속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의 산천과 그 속의 삶을 표현한 작품들에서 ‘조선의 향토’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식민지 상황 아래 피폐된 조선의 현실은 외면하고 감상주의에 빠져들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조선 향토색’이 잘 드러나는 작품은 <초여름의 빛>, <아리랑 고개>, <가을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이다. <아리랑 고개>라는 작품은 영화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과 동일한 현장을 소재로 선택해 민족정서를 반영하려고 했다. 작가 자신이 이 그림에 대해서 ‘의미 있는 화제’라고 언급한 것 처럼 일제하에서 조선인들의 한이 담긴 영화 ‘아리랑’의 내용을 자신의 작품인 <아리랑 고개>에서 간접적으로 나타내려고 했을 수도 있다. 이인성의 ‘향토색’은 기념비 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을 어느날>과 <경주의 산곡>에서 자세하게 드러난다. 



<가을 어느 날>을 살펴보면 멀리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구니를 이고 있는 여인과 소녀가 들녘에 서있는 작품이다. 자연과 인물의 조화가 되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한 긴장감, 울림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장대하게 그려진 푸른 하늘과 붉은 땅을 강렬한 원색의 대비로 나타내며 노랗게 물드는 식물이 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림 속의 풍경과 하나가 되는 듯한 여인, 소녀의 구릿빛 피부는 작가의 ‘향토적’ 분위기를 더 자아내도록 한다. 이국적 취향이라는 지적과 논란도 많은 작품이지만 작품 안에 나타나는 한국적인 인물은 실제 모델을 두고 그려진 것이고, 장대한 화면 구성, 콘트라스트, 붉게 물들어 있는 황량한 대지는 이국적 양식을 한국적인 색채와 정서로 치환시킨 것이다. 이 시기에서 푸른 하늘과 붉은 향토색은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이인성이 정의하는 가장 향토적인 색은 ‘붉은 대지’, 황토색이였고 자신의 작품의 화면에 적극적으로 도입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가을 어느 날>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조선미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경주의 산곡>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작품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첨성대가 바라보이며 붉은 색으로 휘감긴 황량한 벌판이 드러난다. 아이를 업은 소녀와 윗 저고리를 벗은 채 바위에 걸터 앉은 소년이 화면 좌우에 대칭적으로 그려져 있다. 탄력적인 붓질과 화려한 색채, 역동적인 화면 구성이 절정기에 달한 그의 완숙함과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품들로 보아 이인성의 작품은 조선 향토색을 넘어 민족의 정서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절정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민족말살정책을 가속화 시키던 1938년의 그의 작품인 <해당화>를 살펴보면 이들 역시 안정된 구도와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지만 <가을 어느 날>이나 <경주의 산곡>에서 보이는 강렬한 향토색은 사라지고 소재주의적인 느낌이 남는다. 이것은 당시 일제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화단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광복 후 조선미전이 폐막 된 후 창작활동의 무대를 잃게 한다. 특히나 해방 이후의 사회 상황은 미술재건을 위한 집단운동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창작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이화여중 신봉조 교장의 주선으로 미술교사로 특채되면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창작활동은 이전과 같지 않았고 이때 부터 1950년 39세의 나이로 작고할 때까지 그는 이전의 ‘향토색’짙은 작품보다도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미술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그는 자기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들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가 가르치는 학생이나 딸, 부인을 모델로 한 인물 초상화를 그리거나. 집이나 학교 주변인 북아현동, 정동 풍경, 중학교 교정을 그린 풍경화와 정물화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소재들 마다 이인성 특유의 뛰어난 색채감각이 돋보이고, 공간 해석력을 보여 주지만 절정기 시대 작품처럼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지 못하고 세잔느의 스타일이나 평범한 소재를 중심으로 다루며 이인성의 전형적 특징을 찾기 어려워 졌다. 이런 이유로 이인성의 작품이 30년대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의 이인성은 적극적으로 창작활동을 하기보다는 이화여중의 교사와 이화여대 강사로 새로운 서울생활에 대한 적응과 삽화, 수묵화로 일탈을 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인성의 인물화는 당시 화단이 가지는 인물화의 전형적인 특징인 서구적 형태와 비례를 가지지 않았다. 이인성은 한국인의 체형이나 비례와 얼굴, 내면의 심리까지 정확한 관찰력과 빠른 필치로 포착해 낸 작가였다. 이렇게 그는 세부적 인물 묘사보다 인물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주력했고, 인물의 내면 파악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여인 초상>이나 <붉은 배경의 자화상> 그리고 딸을 대상으로 한 <애향>을 보면 인물의 표정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가라앉아 있어 그들의 복잡하고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듯 하다. 특히나 감고 있는 눈을 한 <여인 초상>은 사별한 부인을 그린것으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것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자기 주변을 모델로 해 진지한 표정을 담은 것은 당시 아카데믹하게 상투적인 인물화를 그리던 화단에 신선함을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인성의 향토주의적 색채에 대한 긍정적 시선과 부정적 시선을 보면 긍정적인 시선은 자기회복의 감정과 민족주의와 상통하는 것이고, 부정적인 시선은 반역사적이며 퇴영적, 소극적 보수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이인성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목가적인 소재와 청, 녹, 적, 황색의 혼합된 조화, 강렬한 색채의 구사가 ‘향토적 서정주의’의 커다란 맥을 형성한다.


2014. 01. 08 하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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