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사진매체를 넘어서는 필연적 이미지-오브제





사진이라는 매체는 그 기술적인 면모에서는 세계를 명석 판명한 이미지 코드로 변환하려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이미지화가 평준화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설명하며 사진의 폭력적 성향에 대해 경고한다. 다른 이들은 사진이 가져다줄 미래의 효과에 대한 기대와 의미를 조직했다. 벤야민의 이론은 이들을 모두 감싸며, 사진과 영화 같은 ‘기술적 영상’을 아우라 파괴와 전시적 예술의 특징을 가진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로 정의한다. 아우라가 없는 사진은 원본인 회화마저 복제하지만, 오히려 복제된 사진은 원본성을 강조하는 역할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어찌 됐건 더 쉽게 이미지를 가두고 박제할 수 있는 기기로 발전되어왔다. 요즘 카메라는 모바일 기기에 있는 부속적 기능으로 보인다


일반인들과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아름다운 광경을 높은 화소로 찍기를 즐긴다. 자신의 경험을 눈을 통해 기억하려 하지 않으며, 수잔 손택의 말처럼 “오늘날에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험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렸”다. 과거의 카메라 시대부터 시각적 경험의 축이 바뀌었고, 지금은 더 심화되었다. 그것은 원래 우리의 눈으로 경험하는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분명히 사진은 우리의 인식적 틀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를 다시 사진으로 재고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재고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필자는 사진을 되돌아 보는 동시에 그 영역을 넘어서는 ‘이진영’ 작가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에선 사진에 대한 경고나 긍정의 목적은 없다. 단지 ‘이진영’작가의 ‘암브로타입’을 사용한 사진 작업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 추적하고자 한다.


우연적 요소와 필연적 결과

‘이진영’ 작가는 최근작 <습식 Wet Corrosion> 시리즈 부터 <히스토리아 Historia>, <앵프라맹스 Inframince>, <바람기억 Memory of the Breeze>, <하늘정원 Sky Garden> 같은 일련의 작업에서 ‘암브로타입’을 이용한 습판사진술을 보여줬다. 매체는 자신이 제작되는 방법과 작가의 의도에서 생기는 충돌과정에서 다른 시각적 결과물을 배태할 가능성을 지닌다. 사진은 보통 장치의 눈을 통한 기계적 이미지로 취급되며, 많은 사진 작업 역시 무언가를 작가의 의도에 맞게 빨리 제시하기에 바쁘다. 초창기 사진은 광학적 작용으로서 회화가 주지 않는 현실적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현실성은 증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복제가 쉬운 사진기술의 발전에 따라 은판->인화지->데이터로 이미지가 떠오르는 주요 장소가 달라지며 더 명확하고 이동이 용이해졌다. 하지만 지금 시대와 달리 과거의 인화 방법을 굳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기법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볼 수 있을까? 


콜로디온 습판법의 종류 중 하나인 ‘암브로타입’은 이진영작가의 사진을 규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다. 그것은 인화과정 자체가 우리가 익숙한 사진과 다를 뿐 아니라 나타난 형태 또한 의문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암브로타입’은 ‘콜로디온’ 용액을 이용해 ‘유리판’에 상을 떠오르게 한다. 이 용액은 단시간에 건조된다. 따라서 축축한 상태를 유지해 인화해야 원하는 상을 얻을 수 있다. 이 축축한 상태는 사진을 찍기 전에 포착한 빛의 궤적에 있지 않다. 유리판에 선명하게 인화하기 노력하던 과정에서 작가는 사진 속에 나타나는 우연적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가의 작업에는 젖은 흔적, 하얀 점 혹은 찢겨나간 듯한 부분까지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다. 모호하고 오류 있는 이미지는 처음 마주했을 때의 낯섦 때문에 흥미를 유발한다. 사진에 떠올라있는 오류들은 ‘암브로타입’ 제작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요소이다. 그것들은 사진이 실재의 허구적 재현임을 명시하는 동시에 제작과정의 신비화를 무마시킨다. 이진영 작가는 ‘우연성’이라는 한계를 설정해서 <Retrace>연작에서부터 현재 암브로타입을 사용한 작업까지 일련의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진영 작가의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사진에서도 우연성은 항상 개입하기 마련이다. 사진사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우연성을 최소화시키거나 우연적 요소까지도 덮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을 찍는 과정을 준비한다는 것은 눈에 띄는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진영 작가의 사진 역시 촬영에는 우연적 요소가 들어갈 틈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을 규정할 수 있는 우연성은 <Retrace> 연작에서는 스캐너라는 촬영 매체를 통해서 반영되고, 암브로타입 연작에서는 인화과정에서 유입된다.


암브로타입 인화방식은 유리판 위에 원래의 상과 함께 인화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들이 생생히 복제된다. 사진의 발전단계에서 복제성과 선명성을 모두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 암브로타입이라는 것을 알면 의아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의도치 않게 얻어낸 그리고 이후에는 선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는 과거의 암브로타입이 꿈꿨던 지점을 파괴하고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뚜렷하고 대량의 복제를 위해서(도록이나 홍보 사진, 확대인화 사진이 모순으로 보이지만 후술하는 논의에서 지적하겠다.) 제작하지 않는다. 과거의 매체를 동시대로 끌고 오며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은 지금 발전된 사진이 숨기고 있는 것을 발가벗긴다. 


플루서는 “사진 동작 속에서 장치가 사진사의 의도를 실행하고 있지만, 사진사는 단지 장치가 실행할 수 있는 것만을 의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확실히 이진영 작가의 사진도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 우연적으로 개입되는 요소들이 있으므로 결국 현상과정에서 나타난 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대상의 선택은 자유로이 이루어지지만, 대상의 이미지는 원하는 대로 얻어낼 순 없다. 작가는 결국 최대한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이미지를 제어한다. 수잔 손택은 “사진은 사진작가와 피사체의 협력이 느슨해질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이진영 작가의 이미지역시 느슨해진 순간 자신의 필연적 모습을 드러낸다. 공개된 순간까지도 그 이미지는 의도적이지 못한다. 우연은 유리판에 인화되었을 때 ‘필연’이 된다. 우연의 요소가 필연적 결과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작가가 가시적으로 포착하려 시도한 사진의 상과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이진영 작가는 자기 작업에 개입되는 우연적 요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장노출과 현상 등을 거치는 아날로그의 기술적 한계와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미세한 긁힘이나 자국, 먼지까지 주요 요소이자 창작의 근원이 되었다.”


평면 이미지를 넘어서 경험적 오브제로

이진영 작가의 유리원판과 확대인화 사진에는 모종의 맹약이 있다. 원판은 우연성이 결집하여 만들어진 필연적 이미지다. 반면 확대인화 사진은 무엇이든 복제해 삼켜버리는 힘을 가진 매체다. 다시 암브로타입을 재인화할 때 우연은 개입하지 않는다. 오로지 필연적인 이미지만이 계속해서 복제된다. 이로써 우리는 이 시대의 사진가(영상촬영도 포함)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이미지를 수집하고 강탈하는지 알 수 있다. 같은 매체마저 재복사하는 사진의 힘을 이진영 작가의 작업이 보여주는 원본유리판과 복제사진의 관계에서 알 수 있다. 원판과 복제사진은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한다. 


유리원판은 투명하고 가시적으로 완전하지 않다.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도록 유도된 덕분에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반면 복제사진은 종이든 투명인화지든 가시적으로 완연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유리원판에서 비어있는 가시성을 채운다. 하지만 원판의 투명성은 소실된다. 어떤 사진을 찍으면 필름이나 데이터가 남는다. 필름은 현상되기도 하며 데이터로 변환되기도 한다. 데이터는 인쇄하거나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유리원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개입한 우연 요소가 필연적으로 응집했다는 사실은 복제되지 않는다.


확대인화 사진이 복제성의 증언으로 작동한다면 유리원판은 단순한 사진적 평면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화지와의 차이점인 ‘두께’를 가지고 ‘오브제’처럼 취급 할 수 있다. 따라서 아크릴판을 중간에 끼워 넣고 두 장의 원판을 함께 보여줘서 겹쳐진 이미지를 보게 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원판 6장을 겹쳐서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기능하는 원판은 단순한 사진 인화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시각적인 요소들을 선택해서 편집할 수 있는 ‘몽타주’ 적인 오브제가 된다. 순서를 바꾸고, 끼워 넣을 수 있는 원판은 편집, 변용할 수 있는 가변적 이미지의 특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미지를 가변적으로 변환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일종의 ‘코드’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유리원판을 통해 오브제를 얻어내고 동시에 그곳에 비어버리는 ‘확증된’ 이미지를 ‘확대인화 사진’으로 채운다. 동일한 빛의 궤적에 따른 결과물은 다르게 기능한다.


명석 판명한 이미지와 달리 모호한 이미지는 추상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쉽게 마술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쉽다. 이진영 작가의 이미지도 역시 모호한 이미지의 외연 때문에 신비화의 위협을 받는다. 하지만 암브로타입 작업은 생산주체의 망각을 부르는 사진들의 특성과 다르게 생산주체의 작동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사진은 해독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한 개인이 거기-있었음을 증언하기 위한 것이다. 이진영 작가는 저쪽에 있는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이전 시대 사진이 점점 더 정확한 이미지를 찾아서 보여주려고 한 전략과 달리 작가는 끝없이 모호할 뿐인 한 인간의 시각적 경험을 이미지화한다. 경험을 명증하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가 깎임과 동시에 들러 붙는 우연 요소를 드러낸다. 이진영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불명확한 경험을 재생하고 관람자에게는 다른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2015년 <바람이 알려준 것들> 전시에서 공개한 ‘김준’작가와의 소리협업 설치작업 <바람기억>은 경험의 재생을 시각적 부분에서 청각을 더한 공감각적 영역으로 확장한다. 6장의 원판을 아크릴 사이에 끼워 제시한 작업은 작가가 몽골에서 느꼈던 감각을 압축하려는 시도다. 채집된 소리와 원판에 떠오른 이미지는 실제 몽골의 명확한 증거물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기억’ 속에 남은 ‘경험’을 최대한 ‘비슷’ 하게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앞서 필자는 작가가 최대한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이미지를 선택, 제어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비슷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은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진은 개인의 경험을 공적 오브제로 변환하지만 이진영 작가의 작업은 계속 개인적으로 남게 된다. 관람객은 작가가 느낀 경험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재해석한다.


이진영 작가는 사진의 발전방향에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촬영과정에 집중한다. 따라서 과거의 제작방식을 동시대에서 어떻게 뒤집어 실현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작가는 사진의 역사에서 쉽게 가라앉은 중간단계의 방법을 재사용하며 매체가 동시대적으로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과거 방식이 현재에서 다르게 현상된다면 그 순간 동시대 주류의 방법들은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게 된다. 동시에 그녀의 작업에 포함되는 물의 얼룩이나 먼지, 지문을 통해 사진 안에 ‘우연적 요소’를 선택적으로 개입시킨다. 세계의 사실이나 정보가 아니라 감각에서 출발한 경험적 상황이 사진에 담긴다. 동시에 ‘원판’은 오브제로 ‘확대 사진’은 증명서로 기능하며 ‘사진’이라는 매체의 평면적 조건을 뛰어넘는다. 인화과정과 그 이후의 시각 결과물을 변용해 여러 이미지-오브제를 추가 생산하는 이진영 작가의 작업은 ‘사진 매체’를 재고하는 동시에 그 자체를 넘어선다.


참고 문헌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이재원(역), 이후, 2005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Fur eine Philosophie der Fotografie)』, 윤종석(역). 커뮤니케이션 북스, 1999

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 눈빛, 2006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Le Destin des Images)』, 김상운(역), 현실문화, 2014


 by.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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