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앤제이 +

윤향로

Screenshot

2017. 06.08 ~ 07.06




무한히 반복되는 데이터의 늪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전시'라는 행사를 접하고, 수집하고, 판단한다. 간혹 타임라인을 지나치면서 전시에 대한 기대치를 SNS의 밀도에 맞게 설정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타임라인에서 유독 '윤향로'의 <Screenshot>전시가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니 '아라리오 갤러리'의 <직관적 풍경> 전시에서 그녀의 <Screenshot> 작업을 두 점 보았던 기억이 난다. 털실로 짠 러그와 LED 스크린으로 출력된 이미지였다. 'Screenshot' 전시장에는 아크릴로 그려낸 아주 납작한 이미지가 존재했다. 출력된 형상은 바로 '회화'였다. '유사-회화'라는 문법으로 회화 주변에서 회화에 대해 고민하는 '윤향로' 작가가 왜 직접적인 출력 방법으로 아크릴 회화를 선택했을까? <Screenshot> 연작은 물질적으로 현존하는 순간보다 재현되기 전, 후에 더 집중해 보아야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재현된 회화는 마침표를 찍은 문장이 아니라 접속어에 가까운게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접속하는가? 이미지는 어떻게 재생산되며 점차 열화되는가? 단순히 '열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Screenshot>은 대체 무엇을 포착하고 있을까?


이미지의 생성 전과 후를 좀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메타-오리지널'과 '하위-모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Screenshot> 연작은 미소녀 변신물 애니메이션에서 힘이 시각화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비고 - 우리는 '포착'을 '캡처'로 동시에 '스크린 샷'으로 볼 수 있다.) '캡처'된 이미지는 원본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하위-모델이 된다. 1차 하위모델은 'Waifu2x' 라는 이미지 파일의 해상도를 기계적 상상력으로 메꿔 늘려주는 프로그램에 의해 변화하며 2차 하위모델을 생산한다. 'Waifu2x'를 통해 1차 하위-모델은 2차 메타-오리지널이 된다. 마지막으로 포토샵 CC의 '컨텐트-어웨이 크롭'을 이용해 하위모델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3차 하위-모델은 4차 메타-오리지널이기도 하다. 우리가 앞의 문장들에서 본 것 처럼 순간순간 이미지는 메타-오리지널이자 하위-모델이 된다. 나는 하나의 알고리즘을 제시했는데 그 끝에서 출력되는 결과 값으로서의 이미지는 '윤향로'에 의해 선택적으로 재현된다.


메타 오리지널 (1)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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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오리지널 (2)

디지털로 분리된 애니메이션 이미지 

하위 모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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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오리지널 (3) 

Waifu2x로 리사이즈된 이미지

하위 모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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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오리지널 (4) 

포토샵으로 재형성된 이미지 

하위 모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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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향로'는 <Screenshot>의 정점을 '회화'라는 매체로 선택한다. 각각 다른 확장자인 출력값 중 회화가 가지는 속성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이미지의 대상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윤향로가 그린느 이미지는 이미 현실적 대상이 아닌 데이터 세계에 있는 것이다. '벡터 값'이라는 이데아 세계는 작은 스크린이나 모니터 위에서 각기 다른 해상도로 출력된다. 그렇다면 윤향로는 출력된 값을 그려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의 벡터를 꿈꾸는게 아닐까? 윤향로는 데이터를 다시 현실의 해상도에 알맞게 렌더링한다. 그래서 기계적 복제보다 변수가 많이 생긴다. 이것은 복사-붙여넣기가 아니라 '열화'에 가깝다. 이때의 '열화'는 해상도가 계속해서 옅어지며 상실되는게 아닌 출력되는 매체에 따라 다르게 깎여나가는 전체 상황을 말한다.


동시에 윤향로 작가의 이미지를 우리는 다시 포착해볼 수 있다. 윤향로의 이미지는 캔버스의 물질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마치 종이위에 출력한 이미지 처럼 느껴진다. 결정적으로 압착된 회화가 가난한 이미지로 부활한다. 이미지의 현실-해상도는 카메라의 화소에의해 저당 잡힌다. 메타-오리지널과 하위-모델의 연쇄 고리에서 하위-모델은 이미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시사한다. 이때 작가가 선택하는 전략은 현실과의 괴리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데이터 상으로 해상도를 늘리고, 이미지를 가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추상으로 선택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이미지가 재포착되면 여지없이 가난하고 납작하고 평평하게 나타난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업이 SNS에서 노출되었을때 다른 이들에게 받았던 반응이기도 하다.


현실에 맞춰 렌더링 되는 이미지와 재포착된 데이터로서의 이미지는 부분적 동일성을 가진다. 이 부분적 동일성이란 현대 이미지 생산과 유포의 기본원칙이다. 부분적 동일성이 성립되는 건 파일의 확장자 차이나 출력되는 매체의 차이 그리고 이미지의 차이에서 온다. 러그, 스크린, 회화는 부분적 동일성에 의해 벡터 값을 실현한다. 그러나 회화가 가장 특수한 위상을 가지는 것은 작가가 그 동안 유사-회화로 정의한 본인의 작업 중 가장 회화게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현의 대상은 시신경으로 보는 실체의 물리적 좌표가 아닌 수학적으로 계산된 허구의 좌표 값을 재현한 스크린의 픽셀들 이면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벡터를 재현하는 것이다.


윤향로는 이전 작업에서도 이미지를 변형하거나 재배열하곤 했다. 그녀는 대부분 작업을 위해 이미지의 해상도를 출력 결과보다 높게 설정했다고 한다. 역시나 이번 전시의 알고리즘에서도 해상도 설정에 대해 우리는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전략은 어떤 형식으로 출력될지 모르는 데이터 이미지를 편집할 대 기본적으로 취하는 태도다. '윤향로'는 <Screenshot>연작에서 이미지 출력의 다양한 결을 제시하며 해상도의 번역을 시도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기계적인 계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실의 완전한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한때는 '사진'이 세계를 완전히 투명하게 재현한다고 믿어졌다. 하지만  그 조차도 광학 편집이라는 맥락에서 언제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에서 허구로 드러났따. 디지털 이미지는 너무나 쉽게 재배열될 수 있다. 벡터를 재현한다는 것은 기존 회화와 전혀 다른 재현의 문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윤향로의 작업은 결국 '애니메이션 원본 이미지' - '재생되는 디지털 이미지' - '캡처'의 1차 가공을 거친다. 뒤이어 'Waifu2x' - '컨텐트-어웨이 크롭-의 2차 가공을 거친다. 마지막으로 최총 출력이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다양한 방식으로 물리적 재현이 이루어진다. 이 글에서 '메타-오리지널'과 '하위-모델'로 추적한 것은 이미지가 '엔드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제든지 이미지는 '재조정'된다. 그것이 물리적인 이미지라도 말이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갇혀있는 스크린 속 유동이미지에 더 자극적으로 반응한다. 윤향로의 <Screenshot> 연작은 데이터, 벡터, 스크린의 기호로 집약된다. 회화로 그려냈지만 이는 '유사-회화'에 더 가깝다. 윤향로는 벡터를 재현하며 또 다른 벡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현실에 맞게 '뇌내 렌더링'을 통해서 제시된다.


by.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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