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돈선필'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

2016. 07.14~08.14







돈선필 작가의 개인전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를 보고 나서 리뷰를 쓰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단순히 전시의 리뷰를 쓰자니 뭔가가 계속 맘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두 파트로 나누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파트는 내가 의구심을 가졌던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돈선필’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이라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스스로 설명하지않고서는 섣불리 리뷰를 쓰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파트는 본격적인 전시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나는 ‘돈선필’ 작가가 ‘피규어 텍스트’에서 오늘날의 피그말리온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짚어낸다고 생각이 들었다. 전시와 텍스트를 넘어다니며 과연 오늘날의 피그말리온은 무슨 태도를 취하는지 밝히고자 한다. 첫 번째 글은 굉장히 불친절하고, 인용이 넘쳐나는 글이 될거라고 예상을 했고, 실제로도 그렇다.




PART 1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


돈선필의 전시와 텍스트를 가로질러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전시의 작품 중 <아야나미 리-캐스트>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업과 ‘돈선필’ 작가가 서술한 ‘피규어 텍스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허수를 진짜로 만드는 가짜의 기술’. 이 문구는 비슷한 어조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허수란 재현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이고, 이를 거짓으로 재현해내는 ‘고급 기술’의 결정체가 피규어로 환기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우리는 ‘조르조 아감벤’의 욕망(패티시즘)과 주물(패티시즘적 대상),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커다란 비 이야기)와 시뮬라크르(개별 작품) 그리고 ‘돈선필’의 캐라(기의)와 피규어(기표)를 검토해야 한다. A(욕망/데이터베이스/캐라)는 허수로서 보이지 않는 것이고 B(주물/시뮬라크르/피규어)는 재현된, 제시된 것이다. B는 A를 대체함으로써, A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인정한다. A는 현실 속 대상이 아니라 허수들의 게임에 자리한다. B는 A를 영원히 잘못 인식시킨다.




1. 부재의 부정과 부정의 기호


아감벤은 ‘행간’에서 유령학을 다시 주장하기 위해서 여러 이론들을 검토한다. 그 중 하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다. 이 이론에서 아감벤은 부재하는 대상에 집중한다. ‘주물’은 프로이트에게 어머니 남근의 대체물이다. 주물은 남아에게 거세공포를 유발한다고 주장된다. ‘아감벤’이 부정이자 부정의 기호인 주물에 대한 논의는 바로 그 “부재의 부정이자 부정의 기호”인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패티시즘적 주물은 아감벤에 의해 (가) ’제유법’, ‘은유법’, (나) ‘상품’,’ (다) ‘장난감’으로 연결된다. 아감벤의 안내를 밟아가며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 ‘아감벤’의 논의대로라면 ‘부재의 부정이자 부정의 기호’인 어떤 것에 관해 살펴보자.


(가) 제유법/은유법

패티시즘적 주물은 패티쉬를 효과적으로 환기하는 거짓-대상이 된다. ‘아감벤’은 패티시즘적 사고방식을 언급하며 ‘제유법’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부분이 전체의 대체물이 될 때, 즉 부분 속성을 지닌 용어 A가 전체로 전제되는 용어 B를 ‘부정’함으로써 B를 현실에서 강력하게 체감되도록 한다. 제유와 마찬가지로 은유도 용어 C를 같은 속성을 가진 것으로 합의된 용어 D로 대체(부정)한다. 수사학적으로 둘의 차이는 용어의 속성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아감벤’에게 ‘메타포’란 C를 D로 단순히 대체함으로써 B에 도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메타포는 C에서 도망치기 위한 기술이다. 부재를 부정하기 위한 수사학으로써 제유보다 은유는 더 명확하다. 은유와 제유를 사용함으로써  패티시즘적 대상(주물)은 ‘부재하는 것을 대체’한다. ‘아감벤’은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주물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의 붙잡을 수 없는 대상이 바로 그런 존재방식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킨다는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대상으로서의 주물은 실재하는 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만질 수도 있는 무엇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부재하는 것의 실재로서, 그것은 만진다는 것이 불가능한 허상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게 만들기 때문이다.”[각주:1] 패티시스트는 주물의 수를 무한히 늘리고, 동시에 그 주체는 대상의 특성이 같다면 똑같은 만족감을 거기서 획득 할 수 있다고 아감벤은 설명한다. 이는 ‘히로키’의 오타쿠 분석에서도 다시 이야기될 수 있다. ‘아감벤’은 주물이 부재의 부정이자 기호이기에 “무한한 대체가 가능한 사물”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더불어 복제 자체가 존재의 선결 조건인 피규어는 페티시스트-오타쿠-현대인을 거짓-만족에 몰고 간다. 주물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위해 도망쳐진 대상이며, 그 자신도 계속해서 손안에서 빠져나간다. 


(나) 상품

마르크스의 상품개념은 유령에 들린 사물로 비유할 수 있다. 사용가치외에 교환가치가 더해진 상품은 “본질적으로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자산이다. 때문에 그것을 구체적으로 향유한다는 것은 축적과 교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각주:2] 상품의 ‘주물적인 성격’은 ‘아감벤’에게 “패티시즘의 퇴폐적 주물과 단순히 닮았다고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유사성”[각주:3]을 가진다. 흥미롭게도 [상품 = 사용가치 + 교환가치]라는 수식은 [패티시즘 대상 = 일반적 사용 + 상징적 가치]라는 수식과 대응된다. 만국박람회에서  마법에 걸린 물건은 마법에 빠진 시선으로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되었음을 아감벤은 지적한다. 이 시선은 초월적인 믿음(교환가치/상징적 가치)을 전제로 하는데, 일부분 예술을 보는 시선과 일치한다. ‘돈선필’ 작가는 피규어를 보는 시선이 예술을 보는 시선과 일치해있다고 말한다. 피규어도 상품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못할까? 여기서 ‘아감벤’과 ‘돈선필’의 논의가 충분히 비교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감벤은 주물용어의 변천사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나열할 수 있다. (1) “미개한 문화의 이질적 영역” (2) “경제 분야의 대량 생산품” (3) “성 생활의 ‘은밀한 품목’. 따라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일어난 패티시즘의 확산은 사물들의 총체적인 상품화와 발맞춰 진행되었다.”[각주:4]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추후 논의될 문제를 잠시 짚어봐야 한다. ‘돈선필’은 피규어의 존재 조건으로 ‘선 주문’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렇다면 아감벤의 총체적 상품화(주체적 선택이 아닌 나열된 선택들에 갇힌 상황)와 돈선필의 선 주문(주문자에 의해 ‘탄생’한다는 강력한 환상을 심어주는 상황)은 무슨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차이로 보이는 두 개념은 모든 세계가 상품화한 현재에서 패티시즘이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각각의 모습이 아닐까? 주물은 상징가치를 통해 사물세계의 규칙을 위반한다. 우리가 후에 논의할 ‘피규어’ 또한 규칙 위반을 필두로 살아남는다. ‘피규어’를 비슷한 선상의 ‘조각’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에 의한 창작의 결과로 끊임없이 논의되는 ‘조각’들과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개인의 선택’에 의한 구매의 결과로 보이는 ‘피규어’는 똑같은 시선 안에서 교차한다. 둘은 상징가치라는 함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뒤섞일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이 예술로 그리고 피규어로 각각 존재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배경을 어디에 연결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미리 말하자면 ‘돈선필’은 피규어를 예술이라는 배경설정에 연결해서 서브컬쳐라는 배경을 뒤집는다. 


(다) 장난감

아감벤은 주물에 대한 논의를 ‘장난감’으로 마무리한다. 그에게 장난감이라는 사물은 “또 다른 차원의 사물”이며 사물들의 규칙 안에서는 위반자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사물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귀중한 정보를 제시하는 “근원적 상황의 지표”가 된다. 아감벤은 위니콧이 “과도기적 대상” 그리고 “제 3의 영역”이라고 명명한 것을 통해 주물에 대한 논의를 확장한다. “과도기적 대상”이란 아이가 외부현실에서 제일 먼저 식별하고, 점유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외부적이고 객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각주:5] 이 대상들은 “환영의 영역”에 자리한다. 이 공간이 바로 “제 3의 영역”이다. 그곳은 인간의 내, 외부와 주, 객관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결국 “패티시스트들을 비롯한 아이들, 미개인들, 시인들은 이 심리학적 언어 속에서 떠뜸떠뜸 표현되는 위상학이 무엇인지 항상 알고 있다.”[각주:6] 그렇기에 아감벤에게는 근대에서 자유로운 인문학의 표적이 “제 3의 영역”이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감벤을 히로키와 돈선필에 직접 접속시킬 수 있다. 히로키와 돈선필은 바로 “제 3의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주물-시뮬라크르-피규어는 존재하지 않는 근원적 공간, 우리가 “부재의 부정”으로 이해한 곳에서 유지될 수 있으며, 바로 그 부정의 기호로서 현실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기호들이 인식시키는 것은 은유를 통해 회피하고, 제유를 통해 부정된 대상이다. 이제 우리는 “제 3의 영역”을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와 ‘커다란 비 이야기’에 연결할 수 있다.



2. 데이터베이스와 시뮬라크르


아감벤의 논의가 재현 불가능한 어떤 것과 그것을 대신해 재현된 대상을 여전히 현실의-마법에 걸린-사물과의 관계에 기댄다면, 아즈마 히로키는 이를 무한히 빗나가는 개체로 대치시킨다. 아감벤과 히로키의 접근법은 사물의 관계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감벤은 주물이라는 것이 욕망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고민한다면, 히로키는 사물이 원본 없이 재생산될 수 있는, 즉 시뮬라크르로서 증식될 수 있는 기저 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 글에서 히로키의 서브컬처 비평을 전부 망라할 수는 없다. 그가 구조화하는 세계의 모습을 살펴봐야한다. 히로키의 전제에서 일본은 패전 후 상실된 전통 위에서 세워진 의사-일본(시뮬레이트된 일본)이다. 히로키가 주장하는 오타쿠 문화의 두 가지 특징 중 하나는 ‘2차 창작’과 ‘허구 중시의 태도’다. 둘 다 가상에 가까운 혹은 가상에서 현실감을 더 느끼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원작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사회, 문화적 혹은 법적 보호 아래에서 권리로 주장될 뿐이고, 실제로는 시뮬라크르다. 2차 창작은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로서 소비된다. 동시에 이를 누리는 이들은 허구를 중점으로 활동하며, 관계를 허구를 통해 증식한다. 히로키에 따르면 이런 양상은 현실감각의 부족이 아니라 오작동하는 현실을 회피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다른 현실을 찾아 선택한 결과다.


설정을 따라 제시된 애니와 망가는 하나의 상품이다. 허구의 상품이 존속하려면 기존 세계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필요하다. 결국 일본 서브컬처의 상품들은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 아감벤은 규칙 위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규칙 위반의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위반의 현장을 폭로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문학을 세우려고 한다. 반면 히로키는 일본 서브컬처에 종속된 듯 보이지만 어쩌면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세계상을 보여준다. 그 질서는 바로 ‘커다란 비 이야기’이다. 히로키의 앞세대에서 논의된 ‘커다란 이야기’는 이제 없어졌다. ‘커다란 이야기’라는 질서는 상품이 자본주의라는 질서를 통해 교환가치를 획득했듯, 서브컬처의 개별 작품에 상징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서 커다란 이야기와 개별 작품은 재현되지 않은(불가능한) 것과 재현된 것으로 구분된다. ‘커다란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로 환원되며, 정보의 바다가 된다. 개별 작품이 상징하는 감정의 체계들과 그 배후에 상정된 설정의 정보체가 소비되고 있다. 패티시스트가 주물을 끊임없이 늘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과 달리 오타쿠는 이미 형성된 데이터베이스를 소비한다. 오타쿠는 데이터베이스의 요소들을 지속해서 교환하고 교차시켜낸다. 패티시스트와 오타쿠 모두 접근할 수 없는 대상에 다가가려 하지만 그 시작점은 달라보인다. 오늘날 가상의 세계는 단순히 일본의 오타쿠 문화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의 중요한 핵심을 차지한다.


최근의 문화에서 필요한 것은 강력한 하나의 캐릭터다. 개별 작품의 캐릭터들은 주인공이든 아니든 그 작품을 상징한다. 특히나 이런 상징성은 일본 서브 컬처에서 두드러진다. 모에 요소라고 불리는 것은 ‘모에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조합되는 것이다. 히로키에 따르면 모에 요소로 만들어진 캐릭터란 “작가의 개성이 만들어낸 고유의 디자인이라기보다 오히려 미리 등록된 요소가 조합되어 작품의 프로그램(판매 전략)에 따라 생성되는 일종의 출력결과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상황은 오타쿠들 자신도 자각하고 있다.”[각주:7] 유형학적으로 보일만 한 매력요소(모에)나 설정의 클리셰가 무한히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는 분명 재현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단편과 조각들로 제시될 수 있다. 이 조각들은 바로 “단순한 페티시와 달리 시장 원리 속에서 떠오른 기호이다.”[각주:8] 이때 재현된 대상과 재현물은 실제로는 어떤 연관도 없는 허구의 놀이에 불과하며, 은유와 제유의 게임을 통해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붓는 행위가 된다. 그러나 이때 이를 무조건 부정적인 어투로 말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논의들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오히려 변해간 현실에 가장 발 빠르게 적응한 ‘신인류’가 가상에서 현실감을 느끼는 오타쿠가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이제 가상 없이는 살 수 없다.


히로키는 시뮬라크르 수준에서 발생하는 작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곧 ‘동물적 욕구’이며, 당장 충족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데이터베이스 수준에서 발생하는 커다란 비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인간적 욕망’이며, 충족시킬 수 없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이는 분명히 아감벤의 논의와 유사하게 보인다.[각주:9] 이 글의 논점인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을 히로키의 ‘초평면성’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철저히 평면적이지만 동시에 평면을 초월하는 ‘초평면성’은 세계상을 병렬적으로 나열한다. 히로키는 이를 컴퓨터 화면으로 설명한다. 컴퓨터 언어를 통해 재현되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입력되는 컴퓨터 언어의 관계는 전기 자극이라는 보이지 않는 근원에 연결된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전기자극을 재현한 결괏값에 불과하다. 신호와 자극의 세계는 인간이 가시적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로 주파수를 맞추게 설계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재현 불가능한 것)을 보이는 것으로 아무리 바꿔내도 같은 평면(병렬된 평면)을 넘어다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최종심급에 도달하지 못하고 “가능한 한 많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바꾸어 가능한 한 많은 시뮬라크르를 데이터베이스에서 끌어내려는 다른 종류의 욕망이 대두하게 된다.”[각주:10] 이 글에서 히로키를 아감벤에 이어 서술한 것은 돈선필의 피규어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히로키의 논의를 따라 ‘데이터베이스’라는 재현 불가능한 것과 ‘시뮬라크르’라는 재현된 것 사이에서 아감벤의 “부재의 부정이자 부정의 기호”를 찾아보았다. 아감벤이 사물세계에서의 관계에 명료하지만, 히로키의 논의는 허구의 관계에서 명료하다. 돈선필의 피규어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사물세계와 허구세계를 접목해야한다. 그는 히로키의 광범위한 오타쿠 문화의 상품 중 피규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포착하고 논의한다. 오타쿠 문화를 관통해 현실로 등장하는 피규어를 보기 위해서는 아감벤의 논의를 읽어야만 했다. 피규어의 기표는 아감벤에 기의는 히로키에 빚지면서 돈선필의 ‘피규어 텍스트’와 개인전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를 검토하려 한다.


3. 캐라와 피규어


돈선필 작가는 ‘피규어 텍스트’에서 본인 작업의 대상인 ‘피규어’를 개념화한다. 그는 처음 피규어의 존재를 알았던 당시의 기억과 현재 피규어에 대한 인식 사이에서 그것이 마치 언어처럼 사용됨을 깨닫는다. 그에게 피규어는 사회적 소통이 가능한 조각이다. 피규어가 예술의 문법으로 편입될 때는 일종의 해체가 필요하다. 돈선필은 피규어 작업과 텍스트 서술로 일상 문법의 영역에 있던 피규어를 예술 문법으로 해체한다. 나는 잠시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 전시를 언급하려 한다. 이 전시는 ‘시청각’이라는 장소에서 이뤄졌다. 반-가정집 혹은 의사-가정집으로 보일 만큼 이상한 이 공간 안에서 전시는 수많은 단자들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었다. 먼저 가정집에 있는 가구들과 전자기기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 피규어가 자리를 점유한다. 피규어는 전시장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칙들에 알맞지 않다. 그 규칙에 알맞으려면 판매 혹은 컬렉션 전시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돈선필 작가는 단순한 화이트 큐브 공간과 그 안에서 초월적으로 대상을 살피는 규칙을 회피한다. 그 자신은 전시장에 가는 일이 굉장히 초월적인 경험들이라고 ‘피규어 텍스트’에 서술하지만, 전시에서는 그 초월성을 최대한 은폐하거나, 옅게 만들려는 전략이 돋보였다. 어쨌든 그는 피규어를 전시하는 데 성공했다. 피규어는 캐릭터라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 ‘추정’되며 그것은 히로키의 논의를 따르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되어 확인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돈선필 작가가 전시장에 공개한 작업 중 일부는 피규어와 다른 사물이 뒤섞이며 혼재된 상태를 보여준다. 어디에도 피규어의 영혼이란 자리할 수 없게 된다. 돈선필은 일본의 피규어를 지탱하는 ‘캐라’가 극단적으로 사물화된 이미지라고 본다. ‘피규어 텍스트’에서 ‘모에’는 일종의 사물화 과정이라고 설명된다. 사물화 과정으로서의 모에는 시뮬라크르 수준에서 캐릭터를 빠르게 인식하고 소비하도록 돕는다.




다시 우리의 질문으로 되돌아오자. 캐라는 피규어로 재현될 수 있을까? 아니 재현에 성공한 것일까? 돈선필의 논의에서 힌트를 얻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명료한 형상이나 색 그리고 기호로 환원된 캐라를 통해 피규어는 일차적으로 재현 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우리가 캐라라고 생각하고 체감하는 것은 모에 데이터베이스에서 잘 조합되어 재현된 단편조각이다. 허상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도 재현할 수 없는 속성들을 억지로 사물화시킨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츤데레’라고 부르는 기계적 속성에 가까운 요소는 이미지를 관통할 때 비슷한 재현요소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피규어는 ‘츤데레’라는 그 요소를 어떻게 보유하는가? 사실 답은 간단하다. 피규어는 어떤 다른 추가 작업을 할 필요가 없으며, 원래의 도상에 최대한 가까워지거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면 된다. 이렇게 소스 이미지를 재현하는 방법을 돈선필 작가는 ‘피규어 텍스트’에서 ‘가짜-재현법’과 ‘의존-변형법’으로 설명한다.(하단부에 별첨)


‘가짜-재현법’의 산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다시 재현한 결괏값이 아니다. 우리가 계속 논의해왔듯이 피규어는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 즉 허수의 출력물이다. 영혼-욕망-데이터베이스-캐라-벡터값 등..은 현실에서 체감되기 위해 항상 매개자를 필요로 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매개단계에서 점점 원래의 속성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의존-변형법’은 이 점을 명확히 한다. 유사한 분위기를 통해 대상을 닮은 연속체로 인식하게 하는 ‘의존-변형법’은 앞서 아감벤을 살피며 이야기한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도피로서의 ‘메타포’에 가깝다.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물화된 대상이 현실의 물질이 되면 오히려 추상의 상태로 돌아간다.”[각주:11] 피규어를 소스 이미지에 들어맞게 형상화하는 일은 ‘돈선필’ 작가가 밝히듯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서두에서 말했던 ‘허수를 진짜’로 치환하는 기술은 피규어를 열화된 이미지로 전락하게 만들기도한다. 사실 돈선필의 피규어에 대한 개괄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재현 불가능한 재현’이 어려우냐는 사실이다.
















전시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모든 작품과 가구에는 ‘가격표’가 붙어있어 마치 상품 박람회를 온 기분이다. 이 가격표는 피규어나 다른 가구가 사물이면서 상품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피규어는 사용가치를 가지지 않은 채로 교환 가치와 상징 가치를 보유한다. 우리가 피규어라는 존재를 소유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중의 믿음을 필요로 하게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피규어는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한 영상작업은 전시장에 놓여있는 <아야나미 리-캐스트>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히 작업의 메이킹필름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아야나미 리-캐스트>는 이 영상작업을 위해 제출된 증거로 보였다. 영상을 살펴보면 작가는 지인에게 두 가지 선물을 받게된다. 첫 번째 선물인 에반게리온의 캐릭터인 ‘아야나미 레이’의 열화된 피규어와 두 번째 선물인 ‘아야나미 레이’를 상징하는 머리색 물감(아야나미 블루라고 불리는 색)은 ‘돈선필’이 ‘피규어 텍스트’에서 서술하는 캐라와 피규어의 관계, 사물화된 캐라의 정체성들을 정리한다. 작가는 원래의 아야나미를 대체하기에는 부족한 열화된 피규어를 다시 본 뜬다.(리-캐스트) 그리고 작가는 그 피규어에 회전하는 듯이 팔을 연속해서 접합한다. 만화적 트릭 이미지가 피규어에서 재현된 것 같다. 작가가 다시 본 주조한 피규어는 시뮬라크르로서의 원본과의 관계에서 ‘아야나미 레이’라는 캐릭터와 연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아야나미 블루라는 강력한 기호(시장원리에서 떠오른 기호)를 칠함으로써 완전히 가짜인 피규어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돈선필’의 <아야나미 리-캐스트> 작업은 피규어가 시뮬라크르와 연결되던 모호한 끈을 폭로한다. 허수를 진짜 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실패한 작가는 우리가 광범위하게 범하는 오류, 즉 모든게 재현되어있고, 가시적이라는 착각을 일깨워준다.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피규어의 소스 이미지는 허수이기 때문에 상업적 가치 규준에서 벗어나면 무한히 변형할 수 있지 않을까? 리-리-리-리-리-리 캐스트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뮬라크르인 의사-원본과의 관계에서는 의사-감각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폭로는 피규어가 존재하던 원래 영역의 문법이 아니라 오직 예술의 문법 아래에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피규어는 본래의 소비자와의 관계에서는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더 멀어진 허수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게 아니라 대체된 거짓-재현을 거슬러감으로써 인식한다. 3D 프린터와 VR 등 점차 구체적인 허구를 현실과 연결하거나 가장해 보여주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오늘날 유령학을 통해서 제 3의 영역을 탐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돈선필은 ‘제 3 영역’을 체감하는 방식 중 하나를 시각예술로 가시화한다.


나는 어떤 것도 재현할 수 없다거나 재현이 무의미한 행위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우리는 재현의 굴레, 가상의 굴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드리야르가 경고했듯 재현의 가장, 속임이다. 재현될 수 없는 것이 가장 강력한 대상으로 현실에서 인식되는 요즘 “피규어라는 사물 자체가 보편성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에 물체의 고유한 형태언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해는 더욱 힘들어진다.”[각주:12] 주물을 수집하는 패티시스트는 스스로 주물의 진열장을 채워나간다. 오타쿠는 이미 꽉 찬 데이터베이스에서 용이하게 조합된 가능성을 소비한다. 일반인의 시선에서 이렇게 허무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오타쿠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헛된 인간으로 비친다. 그러나 히로키의 주장에서처럼 허구를 더 사랑(의사-사랑)하고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것은 그 허구 속 현실이 더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재현 불가능한 재현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유효한 요소가 아닌가? 왜냐면 바로 그 과정(은유나 제유 등)을 통해서만 이미지를 현실에서 강력히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날의 피그말리온’은 과거와 다르다. 오늘날의 피그말리온은 어떻게 (의사)사랑을 해나가고 있을까? ‘돈선필’ 작가의 개인전 ‘민메이 어택 리-리 캐스트’는 ‘오늘날의 피그말리온’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며, 구성되는지 보여준다. 다음 글은 ‘민메이 어택 리-리 캐스트’ 전시를 집중적으로 리-뷰한다.



by. 하마



별첨

‘돈선필’ 작가는 ‘피규어 텍스트’에서 가짜-재현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짜-재현법은 피규어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의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해내는가를 핵심으로 한다.” 68p

“가짜-재현법은 ‘불가능’을 담보로 하고 있다. 완벽한 재현이 아닌 유사한 재현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진짜 같지만 면밀하게 계획된 가짜다.” 68p

“사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처럼 보이는 가짜다. 진짜에 한없이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가짜의 흔적이다.” 69p

“가짜-재현법의 피규어는 다른 차원의 이미지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사물로 진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정교한 가짜다.” 71p


‘돈선필’ 작가는 ‘피규어 텍스트’에서 의존-변형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피규어는 별개의 존재로 거듭나 있다. 의도적인 변형이 가해졌다. 그러나 완벽하게 캐릭터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원전에 의존하는 구조를 지속한다. 그렇지만 완벽한 재현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76-77p

“가짜를 둘러싸며 재현을 향해 반드시 달려야 할 필요는 없다. 의존-변형법은 캐릭터를 왜곡한다. 하지만 캐릭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최소한의 연결점을 유지하는 의존성이 있다. 완벽하게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캐릭터와 피규어의 관계는 상보적이다.” 78p


의존-변형법이 가짜-재현법과 비교해 ‘재현불가능한 재현된 것’을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알 수 있다.


“피규어는 관념을 사물화한 캐라를 현실의 물체로 만든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견고한 사물 같은 캐라를 추상적이고 유연한 ‘캐릭터’로 변환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77p

“아이러니하게도 사물화된 대상이 현실의 물질이 되면 오히려 추상의 상태로 돌아간다.” 77p

“의존-변형법의 피규어는 캐릭터에 다가가지 않은 채로 주변을 맴돈다. 캐릭터의 위성처럼 같은 궤도를 기웃거리며 끝없이 자신과 이어져 있는 캐릭터를 지시한다.” 78p


참고 서적

1. 조르조 아감벤, 『행간(Stanze)』, 윤병언(역), 자음과 모음, 2015, 81p

2.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 이은미(역), 문학동네, 2007, 86p

3. 돈선필, 『피규어 텍스트』, 유어마인드, 2016, 77p

  1. 조르조 아감벤, 『행간(Stanze)』, 윤병언(역), 자음과 모음, 2015, 81p [본문으로]
  2. ibid, 87p [본문으로]
  3. ibid, 88p [본문으로]
  4. ibid, 118p [본문으로]
  5. ibid, 125p [본문으로]
  6. ibid, 125p [본문으로]
  7.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 이은미(역), 문학동네, 2007, 86p [본문으로]
  8. ibid, 85p [본문으로]
  9. [욕망 / 욕구] = [욕망 / 주물] = [데이터베이스 / 시뮬라크르] [본문으로]
  10. ibid, 184p [본문으로]
  11. 돈선필, 『피규어 텍스트』, 유어마인드, 2016, 77p [본문으로]
  12. ibid, 85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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