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oci 미술관

self; mapping

이동의 기억, 기억의 이동




육화된 기억의 흔적


현대미술에서는 매체특정적인것 보다도 작가의 관심이 우선되고 그 다음에 매체가 부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젊은 작가들은 자기의 흥미를 끄는 주제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이번에 oci미술관의 young creatives로 선정되어 개인전을 진행중인 '김정은'작가 역시 다양한 매체를 본인의 관심하에 합치시킨다. '김정은' 작가의 관심은 바로 '지도'다. 그녀는 자기 주변을 기록하는 행위의 요체로 지도를 종이, 에폭시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통해 평면과 입체를 아울러 제시한다. 나는 '김정은' 작가가 본인의 기억과 감정을 지도요소들로 세분화해 코드화시키고 다시 지도로 합친다고 보았다. 



<self mapping 141003-150405(부분)>, 트레이싱지 A4 인쇄물 6권, 연필 드로잉, 가변설치, 2015


지도의 제작방식에서 작가는 엄격한 기준을 지킨다. 지도를 그리는 표준방법들을 사용하고 실제지도에 있는 형상을 베껴와서 사용한다. 이렇게 객관화되고 기계적인 화면으로 '지도'가 사용되지만 동시에 주관적인 자기 기억을 결합시킨다. 예를들면 <self mapping 141003 ~ 150405>작업은 2014년 10월 3일부터 2015년 4월 5일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책자형태로 제시된 이 작업은 한장 한장이 모두 트레이싱지이며 그 종이에는 하루의 행적이 지도로 제시된다. 그어진 선들은 작가가 걸었던 길들이며 '재료구입', '제법 쌀쌀해졌다'와 같은 문구가 함께 기록된다. 이 글귀는 그 당시에 작가가 느낀 상황이나 행위에 대한 것이다. 이를 통해 지도가 곧 작가의 기억과 신체를 재발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Floating Place : mapping> 트레이싱지, 연필 드로잉, 105x190cm, 2015


<Floating place : Mapping>은 좀 더 거대해진 규모로 제시된다. 유리에 트레이싱지를 자르고 붙이면서 실제 지도처럼 거대하게 형태를 만들었다. 반복해서 붙여져있는 종이들은 지도에 있는 건물들을 상기시키고 그 사이로 그어진 선들은 작가가 움직인 경로를 상상하게 한다. 역시 이 작업에도 글귀들이 써져있으며, 몇몇 글귀는 서로 이어지고 연관되어있다. 번지 수마저 기록되어있기에 실제지도처럼 느껴진다. 마치 '김정은'작가의 기억 속 거대한 대륙의 지도를 보는 듯 하다. <self mapping>이 하루하루의 지도를 보면서 경로를 가늠할 수 있었다면 이 작업은 규모가 큰데다가 어떻게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어있다. 관람자는 이 앞에서 광활한 대륙의 지도를 보는 것 처럼 헤메인다.



<Diary Mapping : on the road>, 보드지, 스텐봉, 연필 드로잉, 가변설치, 250x100cm,2015



<Diary Mapping : on the road(부분)>, 보드지, 스텐봉, 연필 드로잉, 가변설치, 250x100cm,2015


<Floating place> 작업처럼 노동집약적인 특징은 다른 작업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열된 장소>연작에서는 에폭시를 사용해 지도의 블록을 만들어 굽고 그것을 나열해 붙였다. 이 작업은 지도의 형태는 없지만 구성요소들이 엄격하게 지도의 요소들의 규칙을 따라 만들어져있기에 여전히 지도와 관계를 맺는다. <Diary Mapping>은 종이공예를 하듯이 도로의 모양과 주변의 경관을 만든다. 다양한 지도의 요소들이 그려지고 오려진다음 작가의 손으로 조립되어 입체감을 느끼도록 되어있다. 이 작업은 <self mapping>과는 다르게 글귀가 없지만 작가의 하루동안의 경로를 좀 더 명확히 상상하게 한다. <Floating Island>는 모눈종이를 지도의 모양대로 자르고 여러겹 겹쳐붙여 섬들을 만들고 파란에폭시에 잠기거나, 붙인 작업이다. 파란에폭시는 거대한 판처럼 조형되어있는데 마치 섬들이 바다에 떠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한다. 기억 속 공간들은 파편화되서 제시되었다. 



<나열된 장소 2>, 세라믹, 자석, 스틸, 펜 드로잉, 84x175cm, 2015



<Floating island - coordinate uneasy(부분)>, 모눈종이 컷팅, 에폭시, 가변설치, 300x200x20cm, 2015



<Floating island - coordinate uneasy>, 모눈종이 컷팅, 에폭시, 가변설치, 300x200x20cm, 2015


작가가 노동집약적으로 제작한 '지도'들은 인간의 행위를 육화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들이 선형적이면서 동시에 비선형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기록자(작가)는 자신의 경로라는 '선'을 따라서 제작했지만 결과물을 보는 관람자들은 출발점이나 도착점을 쉽게 판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작가의 작업들은 작가 본인의 기억속 장소들과 관자들의 기억속 장소가 융합해 전혀 다른 곳을 생산해낸다. 이를테면 하이브리드 플레이스다. 이 하이브리드 플레이스는 제작자와 관람자 각각이 기억하는 장소가 아닐뿐만 아니라 관람자 각각에 의해 관계맺어지는 장소로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쉽게 서로의 장소에 대한 기억이 결합될 수 있는 이유는 '탈색'된 조형물들에 각자의 기억 속 색채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좌표를 설정하듯이 주변을 재구성하고 자기의 흔적을 생산하는 태도는 직접적인 건축이 아니더라도 그 공간을 상상할 자유를 준다. 또한 장소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공간에 밀접한 존재인지 되새기게한다. 모눈종이로, 에폭시로 혹은 트레이싱지를 사용해 표현한 개개의 지도요소들은 기억의 코드이다. 이 코드들은 지도가 간략해지고 gps를 통해 본인의 현재위치와 자신이 가고자하는 도착점만 파악하려하는 요즘 지도사용법과 다르게 스스로의 위치와 그 주변을 규범화하고 '출발점'과 '도착점'을 제거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제거된 순간 자기의 모든 행위들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삶을 기록하고 제시하는 육화된 형태로서의 '지도'는 전통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지만 동시에 관람자들에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재설정하게 도와줄지도 모른다. '김정은'작가의 작업은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표현으로서 객관적인 자아비판의 공간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사진출처 - OCI 미술관,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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