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후속작으로 출시된 왕국의 눈물은 같은 세계를 무대로 함에도 다시 꽉 들어찬 모험 요소들로 플레이어의 욕구를 자극한다. 제목부터 살펴보면 '눈물'이라고 직역된 것은 사실 중의적인 단어로서 왕국의 '곡옥'과 '눈물'을 동시에 칭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출토되곤 하는 유물인 '곡옥'은 일종의 장신구인데 그 형태가 마치 물방울과 같이 보이기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게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곡옥 형태의 비석과 젤다의 '눈물'이 제목에서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왕국의 눈물을 흥미롭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크게 두 가지 측면의 분리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플레이 그리고 두 번째는 스토리와 상관 없이 흐르게 되는 '탐험' 그 자체이다. 무엇이 더 매력이 있는가는 각각의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뉠 수 있지만 사실 전작 야생의 숨결의 경우 스토리 자체보다 모험이 주는 파급력과 쾌감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왕국의 눈물의 경우엔 이미 완성된 모험의 세계와 거기에 더 해 아래 위로(정확히 말해 하늘섬들과 지저로) 확장된 형태 안에서 어떻게 스토리가 매끄럽게 전달될 수 있을지 제작진이 충실히 고민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게임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강점은 분명히 스토리의 전달과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쁨을 '겹치고' 또 '분리'한다는 것이다. 링크는 젤다를 꼭 구할 필요가 없다. 젤다가 어떻게 되던지 상관 없이 플레이어는 세계를 샅샅이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로 게임을 계속하고 싶다면 스토리는 끝내져서는 안 된다. 이는 이미 야생의 숨결에서 증명된 일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후속작에서 스토리는 무조건 음미해야 할 정도로 완성되어 있다.  


탐험

우선 이 게임에서도 탐험이 주는 기쁨은 여전히 매우 매혹적이다. 거기에 더해 추가된 '울트라 핸드'라고 칭해지는 크래프팅 기능은 탐험에서의 극복 요소들을 더 창의적으로 플레이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들을 남겨준다. 예를 들어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처음으로 객체들을 조합하고 퍼즐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싸맬때 그 경험은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에게 고유한 것으로 남게 된다. 이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찾아보면 비슷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르기도 한데 자신의 행위가 무언가 특이한 과정을 거쳤을 때 또 다른 쾌감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목적 달성의 쾌감이 게임 속 세계가 '물리법칙'을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서는 지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지점에서는 위배하는 것에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 게임에서 중력이란 아주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른바 상공을 누비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어지게 된다. 링크는 패러세일을 타고 활공을 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거나 혹은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이미 유행처럼 사용할 개인용 호버 바이크를 제작해서 돌아다닐 수 있다. 더 나아가 '부유석'이라는 것을 통해 하늘에 떠있을 수 있다. 다른 기능으로 주어진 '트레루프'의 경우 아래에서 위로 솟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든지 위로 뚫고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물리법칙의 아주 약간의 뒤틀림은 바로 상승과 하강을 용이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전작이 일부 글리치를 이용한 편법으로 하늘로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작에서는 공식적으로 많은 요소들을 통해 위로 향하고 또 아래로 뛰어들 수 있다.

 

대지 위를 달리고 지저를 탐험하고 하늘섬을 누비는 이러한 모험들은 그 자체로 게임안의 객체 하나 하나에 시선을 할당하게 만든다. 어떤 요소들이 무의미하게 배치된 것이라기 보다는 탐험의 자극제이거나 혹은 아주 중요한 매개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주 큰 산이 있는 경우에 플레이어는 등산을 하기 위해 산을 오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동굴을 발견하거나 다른 특정한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그는 원래의 목적인 등산에서 벗어나서 다른 모험으로 향하게 된다. 게임 속 세계란 이미 '정해진 것'이지만 젤다의 전설의 제작진은 이것을 마치 '발견'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런 아주 사소한 전략으로부터 탐험의 맛은 풍부해진다. 또한 이미 배치된 객체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창작물들이 세계와 조응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바퀴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 있는 배를 만들었을 때였는데 마치 프로펠러를 사용하듯 바퀴에 날을 달아서 강을 횡단했다. 아마 왕국의 눈물을 플레이하는 그 누구든지 특정한 퍼즐이나 난관을 자신이 만든 이동수단 혹은 장치로 해결한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

이 게임에서 상승과 하강은 아주 의미심장한 상징 그 자체로 나타난다. 우선 프롤로그에서 젤다는 가논돌프의 부활과 함께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하강'한다. 반대로 링크는 가논돌프를 봉인했던 조나우족으로서 하이랄 초대 왕인 '라울'의 오른손의 힘을 통해 독기에 침식된 손을 교체하고 하늘섬으로 올라가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작에서 간신히 되찾은 하이랄 성은 가논돌프에 의해서 하늘로 떠오르게 된다. 이미 시작 부분에서부터 누군가는 '떨어지며' 또 누군가는 '떠오른다'. 이 두 가지의 상징적 행위는 게임 내내 반복되게 되는데 사실 이건 스토리를 따라가는 과정 보다도 탐험을 할 때 두드러진다. 그리고 종국에 도입부에서 갑자기 사라진 '마스터 소드'를 하늘을 날아다니던 백룡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심지어 그 백룡이 젤다라는 것을 플레이어가 알게 될 때 '상승'이 가지는 의미가 고조된다. 젤다는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떨어졌지만 만 년이라는 시간을 링크에 대한 신뢰 하나로 서서히 떠올랐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링크는 떨어지는 젤다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고 반대로 자신은 라울의 손을 잡아 살아남았기에 새로 얻은 손을 통해 떨어지고 오르는 것을 반복하면서 힘을 쌓아올린다.


상승과 하강과 마찬가지로 '손' 그리고 그것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스토리 전체에서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제작진의 인터뷰에서 게임이 공개되기 전에 이미 '손'이 가지는 의미를 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토리 전체에서 손이 강조되는 장면은 반복되는데 처음에 링크가 젤다의 손을 놓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스토리에서 큰 분기를 지날 때, 정확히 말해 곡옥이 위치한 신전의 기생마물을 제거함으로써 같이 동행한 인물들이 현자로 각성할 때 그들 각각은 링크에게 힘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 악수 혹은 주먹 인사를 비롯해 '손과 손'이 연결되는 장면이 어쩌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강조되서 보여진다. 이 과정을 거듭함으로써 링크는 놓쳤던 손을 최종적으로 붙잡을 준비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손의 맞잡음이 최대의 감동을 주는 지점은 바로 가논을 물리치고 젤다가 백룡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다. 여기서 링크는 추락하는 자신과 젤다 사이를 빠르게 간격을 좁혀서 그녀의 손을 붙잡는다. 놓친 손은 다른 이들의 연결들로 최종적으로 다시 맞잡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제작진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링크라는 주인공의 이름 자체가 사실 '연결'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을 재차 깨닫는다. 링크의 모험과정의 연결들은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에 더 깊게 말 그대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쌓아올린다. 

 

중첩과 분리

탐험과 스토리가 모두 각각의 매력을 뽐내는 이 게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따로 논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 스스로 그것이 따로 놀게 만들 수 있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게임의 디자인 자체는 탐험 과정에서 스토리에 더 깊숙하게 빠져들게 되는 마치 함정 같은 공간들이 배치되어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말하자면 나는 어쩌다가 '코로그의 숲'이라는 곳으로 갔는데 이 곳은 전작에서도 등장했던 곳인 동시에 게임의 시작시점 바로 직전에 주인공의 자신의 검 '마스터 소드'를 두었다가 되찾아온 장소이기도 하다. 이 장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 채 거대한 '데크나무'의 내부에 자리잡은 가논돌프의 독기를 제거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나무가 회복되면서 게임 내에서 찾지 못했던 '마스터 소드'의 위치를 알려주게 되었다. 그 위치는 백룡의 이마 위였고 나는 가서 검을 뽑았다.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백룡이 젤다인지 추측할 수 없었는데 어렴풋이 젤다의 의지를 이어받아 수호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그 동안 등한시 했던 스토리라인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젤다에 대한 숨겨진 진실들을 물색하는 것에 매달렸다. 다른 경우에 데크 나무를 구하는 것 말고도 우선 '용의 눈물'이라고 하는 것을 지상화에서 발견해 접촉함으로써 과거 젤다의 기억을 '읽는 과정'을 우선해 마스터 소드를 되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떤 방식으로 코르그 숲에 먼저 가게 되었고 그 계기로 반대로 용의 눈물을 찾아 스토리를 빨리 알고 싶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는 코르그 숲에 가기 전에 크게 4개의 신전을 해결하고 나서 스토리를 등한시 한 채 자동차나 배 혹은 비행기따위를 만들거나 혹은 몬스터와 전투 하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중에서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코르그 숲에 착지하게 되었고 그것이 전반적인 플레이의 경향성을 뒤바꾼 것이다. 이는 얼마나 게임 속에서 탐험과 스토리의 중첩과 분리가 아주 매혹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얼마든지 플레이어는 스토리에서 멀어진 채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분리 과정 중에서 발견한 요소가 사실 스토리의 중핵에 있는 경우에 다시 스토리 라인으로 소위 말해 흡착되게 된다. 또는 반대로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눈에 띈 다른 장소로 향하게 된다면 다시 분리가 시작되기도 한다. 자신이 탐험하는 세계의 무대를 언제 닫을 것인지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로 남게 된다. 

결론

왕국의 눈물은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을 모두 충실하게 만족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분리 자체가 오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까지 게임분석은 서사론(narratology)과 루돌로지(ludology) 사이의 많은 논쟁을 겪으며 발전되어 왔는데 이는 어떤 게임들이 특정한 부분에 집중된 채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루돌로지스트들을 최고로 만족시켜줬을 '둠'과 같은 게임들에서 스토리는 그저 중요하지 않은 부속품이거나 그 게임에서 총을 당기는 당위성일 뿐이다. 반대의 경우 게임 자체의 플레이가 주는 기쁨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 얻게되는 스토리 혹은 캐릭터들의 매력에 몰두하기도 한다. 스카이림은 그 게임이 가지는 오픈 월드에 대한 가능성 확대라는 가치만큼 스토리의 매력이 출중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게임 개발의 켜켜히 쌓인 역사들을 거치면서 도달된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에서 서사와 플레이의 즐거움이라는 두 가지 측면은 사실은 떨어질 수 없는 그러나 플레이 과정에서는 분리와 중첩을 반복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체험의 단초로 자리잡는다. 놓쳤던 손을 혹은 기회를 다시 한 번 붙잡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란 다른 것들의 극복들을 거치면서 얻게될 것이다. 이 게임은 그러한 희망의 메시지를 스토리안에서만이 아니라 게임 내내 플레이어가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스토리와 탐험이 서로 얽히고섥키는 가운데 플레이어는 풍부한 세계 속에서 근본적인 즐거움을 양측에서 전달받게 될 것이다. 그런 점이 이 게임을 꼭 플레이해 봐야 할 가치를 가진 것으로 만들어 준다. 

 

총점 : 10/10

BELATED ARTICLES

more